잉서(剩書)
말미에 수록된 지문(識文)에 따르면, 『주례』는 1792년(정조 16)에 읽었다가 1811(순조 11)에 다시 읽게 되었는데 새삼 읽기 어려움을 깨닫고, 총명하고 뜻맞는 선비와 고증하고 정돈하고 싶으나, 뜻을 같이할 사람이 없고 병들어 쇠약한 처지를 탄식하는 내용이다. 권8의 「경제고설(磬制考說)」은 악기 경(磬)의 치수를 고찰한 것으로, 평소 『악학궤범』과 『주례』에 소개된 경의 크기가 다른 것에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1792년(정조 16)에 세종대 계축에 만들어진 것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상고하게 된 것이다. 권9의 「의례차설(儀禮箚說)」은 사관례(士冠禮), 사혼례(士昏禮), 사상견례(士相見禮), 향음주례(鄕飮酒禮), 향사례(鄕射禮), 빙례(聘禮), 공식대부례(公食大夫禮), 근례(覲禮), 상복(喪服), 사상례(士喪禮), 사우례(士虞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