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옥(徐宗玉)
세우고, 기강을 바로잡으며, 어진 이를 등용하고, 정직한 관리를 표창하며, 인재를 뽑아 쓰고, 불쌍한 백성들을 구제하며, 국방에 힘쓰고, 재정을 잘 관리하여 쓸데없는 낭비를 줄일 것을 역설하였다. 그 뒤 병조참지·전라도관찰사·대사간·함경도관찰사·대사헌 등을 거쳐 1739년에는 진위겸사은부사(陳慰兼謝恩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740년 평안도관찰사, 다음 해 예조·이조판서, 우참찬이 되었고 1742년에는 사정당상(査正堂上)이 되어 훈신(勳臣)의 후손은 9대까지 군역을 면제할 것을 결정하였다. 1745년 호조판서 재임 중에 죽었다. 영조는 서종욱의 죽음을 애도하고 충후관대(忠厚寬大: 충성스럽고 후덕하면서 관대함)한 인물이라 평하고, 무신란을 예견한 선견지명에 탄복하였다. 1748년 문민(文敏)이라는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