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예(權輗)
한편, 김안로(金安老)와 손을 잡고 복성군옥사(福城君獄死)를 일으켜 심정(沈貞)·성세창(成世昌) 등을 탄핵, 파직시키고 사사(賜死)했다. 그 뒤, 홍문관부제학·대사헌 등 언관을 역임했고, 공조참판·호조참판·병조참판을 거쳐,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형조판서·대사헌·이조판서·우참찬 등 내직에 기용됐다. 그러나 1537년 김안로가 사사되고, 그 일파가 축출되면서 심언광(沈彦光)·심언경(沈彦慶)과 아울러 파직, 안동에서 10여 년 은거하다가 죽었다. 성품은 강경해 나서기를 좋아했고, 자질이 총민했다. 요직을 역임하고 권력을 장악한 바 있어도 근검해 가산은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 문집으로 『마애집』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