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긍(士兢), 호는 기오헌(寄傲軒). 충청남도 한산 출신. 권인(權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권전(權佺), 아버지는 사간 권양(權讓), 어머니는 홍사도(洪思道)의 딸이다. 권변(權忭)의 동생이다.
1691년(숙종 17)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정자가 되었으며, 1694년 정언을 역임했다. 1699년 지평이 되어 두메 산골 읍민들이 세포(歲布) 대신 돈이나 쌀로 바치기를 원하며, 또 그 양도 줄여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1701년 보덕, 1707년 헌납·장령을 역임하고 그해 사은 겸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11년 집의가 된 뒤 동부승지·의주부윤을 역임했으며, 1717년 경상도관찰사에 이어 1719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어 우도균전사(右道均田使)를 겸했다. 1720년(경종 즉위년) 평안도관찰사, 이듬해 대사간이 되었으며, 이어서 형조참판·강화유수·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1725년(영조 1) 한성부우윤이 되었으며, 그해 사은 겸 주청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 공조판서·좌참찬을 역임했다. 이듬해 형조판서가 된 뒤 호조판서·한성부판윤을 지냈으며,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호서안무사가 되었다. 그러나 일찍이 이곳의 관찰사를 지낸 권업이 도내 사정을 잘 안다고 해 다시 충청도관찰사에 제수되었다.
1730년 다시 한성판윤이 되고, 이어 예조판서·지돈녕을 거쳐 1734년 다시 경상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고향으로 무단 퇴거해 부임하지 않아 상주에 부처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다시 기용되어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와 대사헌이 되었으며, 이어서 좌참찬·우참찬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