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경서(景瑞). 영의정 구치관(具致寬)의 후손이다.
일찍이 부모를 잃고 가정이 빈곤하여, 가족의 부양을 위해 학문을 중단하고 무과에 급제하였다.
당시 병권을 잡고 있던 김석주(金錫胄)와 신여철(申汝哲)의 추천을 받아 선전관(宣傳官)에 임명되었고, 그 뒤 여러 지방의 무관직을 역임하면서 명성을 쌓았다.
1714년(숙종 40) 충청도수사로 있을 때 배를 만들 목재와 군졸 관리를 소홀히 하였다 하여 사간원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724년(경종 4) 충청병사에 임명되었으나, 소론인 장령 이이제(李以濟)의 배척을 받아 부임도 하기 전에 해직되었는데, 노론에 속한 무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듬해 영조 즉위 후 노론이 득세하자 평안병사에 임명되었다가 얼마 뒤에 파직되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 등이 충청도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향리에서 변을 듣고 창황히 서울로 달려가 왕을 호위하였다. 이 때의 충정으로 죽은 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