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은 1688년(숙종 14) 10월소의 장씨(昭儀張氏) 몸에서 출생하였고, 이듬해 1689년 2월 현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산정(山頂)에 태실을 세웠다.
1726년(영조 2) 영조는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를 갖춘 경종대왕태실비(景宗大王胎室碑)를 세우고, 순호군(巡護軍) 16인을 두어 3년마다 위안제를 지냈다.
1831년(순조 31) 11월 김군첨(金君瞻) 등이 작당하여 이 태실을 파헤치고, 석물(石物)을 흩어놓고는 태봉지기에게 화를 전가시키려고 하였는데, 충청도관찰사 홍희근(洪羲瑾)이 진상을 보고하자 조정에서는 예조판서 조인영(趙寅永)을 파견하여 진상을 조사하게 한 뒤 주동자 김군첨을 사형에 처하고, 그 밖의 관련자 11인은 먼 섬으로 귀양보냈다.
이듬해 1832년 3월 예조참판 서희순(徐憙淳)을 보내어 태실을 개수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약 1세기가 지난 뒤인 1928년조선총독부에서 태항아리를 꺼내가서, 석물은 흩어지고 태실비만 남았던 것을 1976년 완전하게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