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태실작변 ()

목차
관련 정보
충주 경종 태실 정면
충주 경종 태실 정면
조선시대사
사건
조선 제20대 왕 경종의 태실을 파헤친 사건.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 제20대 왕 경종의 태실을 파헤친 사건.
내용

경종은 1688년(숙종 14) 10월소의 장씨(昭儀張氏) 몸에서 출생하였고, 이듬해 1689년 2월 현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산정(山頂)에 태실을 세웠다.

1726년(영조 2) 영조는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를 갖춘 경종대왕태실비(景宗大王胎室碑)를 세우고, 순호군(巡護軍) 16인을 두어 3년마다 위안제를 지냈다.

1831년(순조 31) 11월 김군첨(金君瞻) 등이 작당하여 이 태실을 파헤치고, 석물(石物)을 흩어놓고는 태봉지기에게 화를 전가시키려고 하였는데, 충청도관찰사 홍희근(洪羲瑾)이 진상을 보고하자 조정에서는 예조판서 조인영(趙寅永)을 파견하여 진상을 조사하게 한 뒤 주동자 김군첨을 사형에 처하고, 그 밖의 관련자 11인은 먼 섬으로 귀양보냈다.

이듬해 1832년 3월 예조참판 서희순(徐憙淳)을 보내어 태실을 개수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약 1세기가 지난 뒤인 1928년조선총독부에서 태항아리를 꺼내가서, 석물은 흩어지고 태실비만 남았던 것을 1976년 완전하게 복원하였다.

참고문헌

『순조실록(純祖實錄)』
『일성록(日省錄)』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