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중(敬仲), 호는 제월재(霽月齋). 권인(權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권전(權佺)이고, 아버지는 권양(權讓)이며, 어머니는 한극겸(韓克謙)의 딸이다. 현감 권현(權誢)에게 입양되었다.
1687년(숙종 13) 알성문과에 장원급제, 지평·장령·집의·헌납·사간 등을 지냈다. 1703년 조광조(趙光祖)·이이(李珥)의 유집에서 현군이 행하여야 할 18개조를 뽑아 『국조명신주의집록(國朝名臣奏議輯錄)』을 편찬하여 숙종에게 바쳤다.
내용은 근성학(勤聖學)·양세자(養世子)·근천계(謹天戒)·절완호(絶玩好)·억사치(抑奢侈)·엄궁위(嚴宮衛)·두참설(杜讒說)·변사정(辨邪正)·득현상(得賢相)·개언로(開言路)·추성신(推誠信)·파붕당(破朋黨)·계척원(戒戚畹)·정사습(正士習)·휼민은(恤民隱)·엄장법(嚴贓法)·신기미(愼幾微)·택장수(擇將帥)였다.
특히, '득현상'에서 당시의 재상들을 비난하여 우의정 김구(金構)와 좌의정 이여(李畬)의 처벌을 주장하였으나 숙종은 옹호하였다. 그 뒤 평안·황해·강원·함경·경상·충청도 등의 관찰사를 역임하는 동안 선정을 베풀어 명관으로 이름이 났다.
1721년(경종 1) 한성부판윤으로 신임사화를 맞아 삭직되었다가, 1725년(영조 1) 노론이 집권하자 부총관·판윤·공조판서 등을 지냈다. 1727년 정미환국으로 다시 물러났다가 형조판서·참찬 등에 여러 차례 기용되었으나, 사퇴하고 전원생활로 여생을 보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