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도일(道一), 호는 손재(巽齋)·정묵당(靜默堂). 사어(司禦) 권근중(權謹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의정 권대운(權大運)이고, 아버지는 권위(權瑋)이며, 어머니는 관찰사 이덕주(李德周)의 딸이다.
1689년(숙종 15)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독서당에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이듬해 도당록(都堂錄)에 뽑히고 사서(司書)에 이어 교리(校理)·헌납(獻納)·이조좌랑, 1691년 수찬(修撰)·부교리·이조정랑, 1692년 부응교(副應敎)·사간·승지, 1693년 대사간·대사성, 이듬해 이조참의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이 해 그를 등용한 민암(閔黯) 등이 실각하는 갑술옥사가 일어나자 관직을 삭탈당하고 고군산도(古群山島)에 위리안치되었다. 1708년 전리(田里: 고향인 시골 마을)로 방귀(放歸: 추방하여 돌아가게 함)되었다가 1721년(경종 1) 풀려나 이듬해 전라도관찰사에 기용되었으며, 1723년 함경도관찰사에 이어 이듬해 형조참의·호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728년 척질(戚姪) 이인좌(李麟佐)가 난을 일으키자 자살하였다. 저서로 『정묵당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