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징(李久澄)
1602년 장령, 1607년 공조·호조·예조의 정랑, 성균관전적, 세자시강원문학·필선을 역임하였다. 1608년에는 성균관직강 등을 거쳐, 광해군 때에 수찬·부교리·종부시정·군자감정 등의 내직과 안산군수·함경도도사 등의 외직을 거쳤으며, 사헌부장령으로 있을 때 폐모론에 반대하던 이항복(李恒福)을 처벌하지 못하게 항쟁하다가 파직되었다. 4년 뒤 문천군수가 되었고, 인조반정 후에는 내자시정(內資寺正)을 거치고, 이괄(李适)의 난 때에는 왕을 호종하여 공주에 갔다온 뒤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계되었다. 그러나 다른 관료들의 시기가 있어 중앙에는 진출하지 못하고 고산(高山)·선산·청송 등으로 나갔다. 병자호란 때에는 남한산성에 호종하고 돌아온 뒤, 형조참의·동지중추부사 겸 부총관을 거쳐 공조참판이 되었다. 164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