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관(聖觀). 이대해(李大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주(李胄)이다. 아버지는 이진하(李鎭夏)이며, 어머니는 박순(朴珣)의 딸이다.
1727년(영조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공조참의에 이르렀다. 1731년(영조 7) 장령이 되어 토포사(討捕使)의 성실성과 백수일(白守一)의 인삼수수, 『경종실록』의 행장을 찬술할 것을 상소하였다.
이듬해에는 국가의 경비를 줄이고, 삼국(三局)의 보미(保米)를 세금을 운반하는 배에 함께 싣도록 하여 잡비를 줄이자는 상소를 하는 등 국가재정에 관한 많은 상소를 하였다.
1745년(영조 21) 공조참의로 있을 당시 사헌부에서는 ‘사람됨이 흐리멍텅하고 나이가 많아서 능원(陵園)을 봉심할 때 무릎을 꿇어 절할 수 없으니 체차(遞差: 관직을 교체하거나 잠시 다른 관직을 받기 전의 대기상태를 일컬음)하소서’라고 탄핵하기를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은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