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운경(雲卿), 호는 수은(睡隱). 찬성사 권근(權近)의 8대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 권종(權悰)이고, 아버지는 공릉참봉(恭陵參奉) 권현(權晛)이며, 어머니는 의금부도사 이희삼(李希參)의 딸이다.
1597년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수찬(修撰)·형조정랑·장령(掌令)·교리(校理)·사간·대동도찰방(大同道察訪)을 거쳐, 1609년(광해군 1) 경주부윤에 승진되었다. 1613년 승지로서 계축옥사에 연루된 인목대비의 동생이며 김제남(金悌男)의 아들인 김선(金瑄)의 감형을 청하였다.
1616년 수원부사가 되고, 이어 함경도관찰사·한성판윤을 역임하였다. 1621년 상락군(上洛君)에 봉해지고, 우참찬을 거쳐 1622년 병조판서가 되어 권신 이이첨(李爾瞻)에게 아부하지 않아 수차 탄핵을 받았다.
인조반정이 일어나 대신고관이 모두 도망쳤을 때, 김류(金瑬)·홍서봉(洪瑞鳳) 등의 추천을 받고 홀로 제위(諸衛)의 군사를 모아 궁궐을 호위하여 공을 세웠으나, 유능함을 질시한 반정공신들로부터 계축옥사 때 형방승지로 김제남을 곤욕시켰다는 무고를 받고 양산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공신들의 사주를 받은 경상도관찰사 민성휘(閔聖徽)에 의해 왜인과 내통하여 반란을 꾀하였다는 죄목으로 참형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