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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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의 제11대 왕, 문종의 아들인 왕자.
이칭
시호
장헌(莊憲)
이칭
왕비(王㶨)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092년(선종 9)
본관
개성
출생지
개성
주요 관직
검교사공 상주국|검교상서령 수사도|수태위겸중서령
정의
고려의 제11대 왕, 문종의 아들인 왕자.
개설

이름은 왕비(王㶨). 문종의 아들로 어머니는 이자연(李子淵)의 장녀인 인예순덕태후 이씨(仁睿順德太后李氏)이다.

동복형으로는 순종·선종·숙종과 대각국사(大覺國師) 왕후(王煦)·상안공(常安公) 왕수(王琇)·보응승통(普應僧統) 왕규(王規) 등이 있고, 동복 아우로는 변한후(卞韓侯) 왕음(王愔)·낙랑후(樂浪侯) 왕침(王忱)·총혜수좌(聰慧首座) 왕경(王璟) 등이 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077년(문종 31)에 검교사공 상주국(檢校司空上柱國)에 특진하여 금관후의 작호와 식읍 1천호가 하사되었으며, 1086년(선종 3)에 검교상서령 수사도(檢校尙書令守司徒)에 오르고 식읍 2천호를 받았다.

부여공(扶餘公) 왕수(王燧: 문종비 仁敬賢妃 소생)가 적경궁주(積慶宮主: 문종비 仁敬太后 소생)에게 장가드니, 금관후는 변한후 왕음과 진한후(辰韓侯) 왕유(王愉: 문종비 仁敬賢妃 소생)와 더불어 “동성(同姓)에게 장가듦이 불가하다.”고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기에서 동성이라 함은 부계가 아니라 모계를 지칭한 말로, 인경현비와 인예태후는 모두 이자연의 딸이기 때문이었다. 후사가 없이 죽자, 형인 선종은 불교식 장법인 산골장(散骨葬)을 피하고 후장(厚葬)하도록 하였으나, 유사(有司)에서 따르지 않았다.

수태위겸중서령(守太尉兼中書令)에 추증되고, 식읍 3천호에 식실봉(食實封) 5백호를 지급받았다. 학술에 뛰어났다고 한다. 시호는 장헌(莊憲)이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집필자
황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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