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 ()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식재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입부(立夫)
식재(植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54년(철종 5)
사망 연도
1921년
본관
행주(幸州)
출생지
전라남도 장성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식재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입부(立夫), 호는 식재(植齋). 장성(長城) 출신. 아버지는 기진연(奇晉衍)이며, 어머니는 광산김씨로 김재림(金在林)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으로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족형(族兄)인 기우만(奇宇萬)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토벌하려고 하였는데, 조정에서 의병을 해산시키라는 조칙을 내리자 몹시 원통해하며 포기하였다.

우리 나라가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당시 쉽사리 패배하여 처참하게 유린당하게 된 원인이 농병정책(農兵政策)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데에 있다고 통탄하였다.

국가의 안녕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우선 농병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어야 하며, 그 방법으로는 백성에게 전답을 균등하게 분배하여 경제생활을 부유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제시하였다. 저서로는 『식재집(植齋集)』 3책이 있다.

참고문헌

『식재집(植齋集)』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