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입부(立夫), 호는 식재(植齋). 장성(長城) 출신. 아버지는 기진연(奇晉衍)이며, 어머니는 광산김씨로 김재림(金在林)의 딸이다.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으로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족형(族兄)인 기우만(奇宇萬)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토벌하려고 하였는데, 조정에서 의병을 해산시키라는 조칙을 내리자 몹시 원통해하며 포기하였다.
우리 나라가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당시 쉽사리 패배하여 처참하게 유린당하게 된 원인이 농병정책(農兵政策)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데에 있다고 통탄하였다.
국가의 안녕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우선 농병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어야 하며, 그 방법으로는 백성에게 전답을 균등하게 분배하여 경제생활을 부유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제시하였다. 저서로는 『식재집(植齋集)』 3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