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동(永同). 자는 경성(景惺), 호는 석천(石川). 상주 출신. 할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 김자(金滋)이고, 아버지는 진사 김언건(金彦健)이며, 어머니는 참봉 조이(趙恞)의 딸이다.
1567년(명종 22)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의 상을 당한 뒤로는 과거공부를 그만두고 낙동강변에서 낚시로 소일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해 여름에 상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적을 다수 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감사 김수(金睟)가 전공을 행재(行在)에 보고하여 사온서주부(司醞署主簿)를 제수받았으나 사양하였고, 그해 가을에는 순찰사가 함창현(咸昌縣)의 수령이 궐석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함창현의 공무를 보도록 하였으나 또 다시 나아가지 않았다.
1593년 모친상을 당하였는데 노년에 전란까지 겹쳤음에도 예식을 집행함에 틀림이 없었다. 상복을 벗자 1596년에 조정에서는 용궁현감(龍宮縣監)을 제수하여 왜적에 맞서게 하였다. 그 뒤 1604년 온성판관(穩城判官)을 역임하였다. 뒤에 좌승지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