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상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 충렬왕~충혜왕대에 활동한 문신이자 간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339년(충혜왕 복위 즉위년)
주요 관직
좌승지|지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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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김원상은 고려 후기 충렬왕~충혜왕대에 활동한 문신이자 간신이다. 오잠, 석천보, 석천경 등과 함께 충렬왕에게 아부하였으며, 충숙왕 때에는 조적과 함께 심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한편, 국가의 비밀을 심왕에게 알려주었다.

정의
고려 후기 충렬왕~충혜왕대에 활동한 문신이자 간신.
가계 및 인적 사항

고려 후기 원간섭기의 재상 민지(閔漬)의 둘째 사위이다.

주요 활동

김원상은 충렬왕대에 과거에 급제하여 주부(注簿)에 있었다. 이때 내시 박윤재(朴允材)와 함께 궁중 잔치에서 왕의 총애를 받던 기생 적선래(謫仙來)에게 자신이 지은 태평곡(太平曲)을 부르게 하였다. 이 때문에 충렬왕에 의해 발탁되어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이후 그는 비서윤(秘書尹), 지감찰사사(知監察司事), 우부승지(右副承旨)에 올랐다가 파면되었으나, 다시 왕명으로 복직되어 전주(銓注)를 맡게 되었다. 이때 그는 홍자번(洪子藩)과 함께 오잠(吳潛)의 죄를 원의 사신 첩목아불화(帖木兒不花)에게 고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오잠에게 참소를 당하여 동지밀직(同知密直) 김태현(金台鉉) 등에게 체포를 당할 뻔하였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뒤에 좌승지(左承旨)에 올랐다가 지신사(知申事)가 되었다.

특히, 김원상은 홍자번이 충렬왕과 충선왕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자, 충렬왕을 모시던 자신과 같은 신하들에게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하여 김도(金瑫)에게 전주권(인사권)을 넘기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는 또한 조적(曹頔)채하중(蔡河中), 유청신(柳淸臣)과 오잠(吳潛) 등 심왕(瀋王) 왕고(王暠)와 협력하여 입성책동(立省策動)을 벌이려는 세력과 매우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는 결국 순군에 하옥되고 유배를 당하였다가 원 황제의 명으로 사면되었다. 이와 같은 그의 정치 활동으로 『고려사(高麗史)』 간신(姦臣) 열전에 그의 전기가 수록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민지처신씨묘지명(閔漬妻申氏墓誌銘)」

논문

이정신, 「고려후기 입성론과 국왕의 역할」(『한국사연구』 179, 한국사연구회, 2017)
이명미, 「충숙왕대 국왕위 관련 논의와 국왕 위상」(『한국중세사연구』 36, 한국중세사학회, 2013)
이범직, 「원 간섭기 입성론과 유청신」(『역사교육』 81, 역사교육연구회, 2002)
김혜원, 「원 간섭기 입성론과 그 성격」(『14세기 고려의 정치와 사회』, 민음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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