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정(子定), 호는 용계(龍溪). 순성(順誠)의 현손이며, 아버지는 영동현감 김표(金彪)이다. 재종숙 김양(金讓)에게 입양되었다.
1591년(선조 24) 사마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다. 1593년 정자가 된 데 이어, 지제교·수찬·교리·응교·정언·사간·장령·집의·필선·보덕·승지, 예조·병조·형조참의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613년(광해군 5) 집의로 있을 때, 박응서(朴應犀)의 무고로 영창대군을 죽이자고 주장하는 지평 정호관(丁好寬)을 면박했고, 인목대비를 폐하려는 이이첨(李爾瞻) 일당에 반대하면서 그 죄상을 폭로하였다.
외직으로 행주판관, 경기·평안·전라·강원도의 도사를 거쳐서 경상감사 및 남양·순천·상주·청풍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 때 임명된 조신들이 외직에서 모두 파직되었으나 특별히 유임되었다. 저서로는 『용계유고(龍溪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