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수오(受吾), 호는 이소당(履素堂). 할아버지는 활인서별제 노홍(盧鴻)이고, 아버지는 돈녕부첨정 노극신(盧克愼)이며, 어머니는 청주목사 이증영(李曾榮)의 딸이다. 큰아버지인 노수신(盧守愼)이 진도에 유배되었을 때 따라가 학문을 배웠다.
1574년(선조 7) 처음 벼슬길에 올라 은진현감을 거져, 의성현령이 되고, 1584년에 교하현감을 지냈다. 임진왜란 중에 세자를 이천에 배종하여 첨정이 되었고, 김응남(金應南)과 함께 군량운반에 공을 세웠다.
1597년에 청풍군수와 단양군수를 거쳐 1602년 천안군수가 되었고, 대동법을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한다.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1610년 고부군수로 재직하다가 관부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