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일본인학자 고이즈미(小泉顯夫)와 사와(澤俊一)에 의해 처음으로 조사된 이래, 1936·1938·1940년 등 네 차례에 걸쳐 모두 17기에 대한 발굴이 이루어졌다. 이 중 1927년의 조사내용은 보고되지 않았으나 나머지 세 차례의 조사결과는 보고되었다.
대봉동고인돌은 대체로 남북 일렬로 배열되어 있으며, 각 고인돌의 장축도 모두 남북으로 되어 있다. 굄돌〔支石〕의 유무에 의해 유지석식(有支石式)과 무지석식(無支石式)으로 구분된다. 구조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유형은 편평한 덮개돌을 4개의 굄돌로 지탱하게 하고 그 아래는 자갈을 깔아놓은 이른바 바둑판식 고인돌이다. 제4구의 제3호고인돌이 이에 해당된다.
둘째 유형은 편평한 덮개돌을 굄돌 없이 자갈을 깐 땅 위에 바로 놓은 것이다. 제1구의 제2호고인돌과 제5구의 제3호고인돌 및 옛 대구사범학교 앞 고인돌이 여기에 속한다. 셋째 유형은 편평하지 않은 덮개돌을 굄돌 없이 자갈을 깐 땅 위에 바로 놓은 것이다. 제1구의 제1호고인돌, 제4구의 제1·2호고인돌, 제5구의 제1·2호고인돌이 이에 해당된다.
한편, 지하구조물은 자갈을 몇 겹 깔아 만든 묘역(墓域) 안에 분포되어 있다. 대체로 한 개 또는 몇 개의 돌널〔石棺〕이나 돌덧널〔石槨〕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몇 개의 돌널이나 돌덧널이 있는 고인돌의 덮개돌은 단순히 지상의 표지 구실을 하는 것으로서 특이하다.
출토유물은 돌검·돌살촉·토기 등이 있다. 돌검은 점판암을 정교하게 갈아서 만든 것으로서 유병식(有柄式)과 이단병식(二段柄式)의 2가지가 있다. 돌살촉 또한 점판암제로서 모두 유경식(有莖式)에 속하는 것들이다. 토기는 적갈색 민무늬토기와 붉은간토기가 출토되었다.
대봉동고인돌은 최초의 학술적 조사를 거쳐 구조가 밝혀진 고인돌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또한 구조가 다양하고 강돌을 깔거나 표지적인 하나의 덮개돌 아래 몇 개의 매장부가 있는 점은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서 학술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