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를 의미하는 영어 표현으로는 ‘popular culture’와 ‘mass culture’가 있다. ‘mass culture’는 대중사회에서 대중매체에 의해 대량 생산된 문화란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대중(mass)이란 말에는 주체적이지 못하고 고립분산되어 있으며 비합리적인 집단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popular culture’는 ‘다수의 사람들이 향유하는 문화’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mass culture’가 주로 문화의 생산 과정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라면, ‘popular culture’는 문화의 수용과 소비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mass culture’는 대량 복제 미디어가 등장한 근대 이후의 문화산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한정되지만, ‘popular culture’는 근대 이전 평민들의 문화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물론 현대의 ‘popular culture’는 주로 미디어에 의해 생산 유통되는 문화로 구성된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popular culture’와 ‘mass culture’는 동일한 대상을 각기 다른 시각에서 지칭하는 개념이다.
한국의 문화 담론에서 대중문화는 고급문화, 민속문화, 민중문화, 민족문화 등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정의되곤 한다. 고급문화에 대립될 때 대중문화는 ‘대량 생산된 질 낮은 문화’라는 의미를 지니며, 민속문화와 대비될 때는 ‘현대적인 매스미디어에 의해 상품화되어 소비되는 문화’라는 의미를 지니며, 민중문화라는 개념과 결부되면 ‘대중의 의식을 마취시켜 기존 체제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도구적 성격의 문화’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민족문화와 대비될 때는 ‘서구 문화제국주의의 산물’이란 함의를 갖게 된다. 이처럼 대중문화는 주로 부정적인 시각으로 규정되어 왔다.
대중문화는 크게 세 가지의 층위를 포괄한다. 즉 대중문화 텍스트의 생산과정, 텍스트 자체, 그리고 텍스트의 수용과정이 그것이다. 영화, 드라마, 대중음악 등 대중문화 텍스트는 주로 대중매체, 문화산업에 의해 생산되어 대중의 일상생활에서 소비된다. 이 과정에서 텍스트가 생산되는 과정에 개입하는 자본과 권력의 영향, 대중의 취향과 선택, 유통과정과 시장, 대중의 다양한 수용 방식 등이 대중문화에 영향을 준다.
대중문화는 흔히 매스커뮤니케이션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즉 영화, 방송, 대중음악 등 미디어 산업에 의해 생산되어 상품으로 제공되는 산물들을 대중문화라 부른다. 이런 미디어 상품은 대부분 최대의 이윤을 얻고자 하는 시장 논리에 따라 생산된다. 미디어 상품은 부가가치가 높은 대신 시장에 대한 예측이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전략이 대단히 중요한데 여기에서 대중문화의 주요한 경향들이 생겨난다. 예를 들면 잘 알려진 스타를 기용함으로써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고자 하는 스타시스템(Star System), 기존의 흥행 요소를 모방하거나 재활용하는 전략, 가장 적극적인 소비층을 겨냥한 상품을 생산하는 것, 대중의 평균적인 취향에 호소하는 것 등 대중문화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전략들은 모두 여기서 비롯된다.
대중문화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존재한다. 대중문화를 수용(혹은 소비)한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특별하거나 낯설지 않은 행위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집안 청소를 하면서 음악을 듣고 식사를 하면서 TV를 시청한다. 이는 대중문화 실천이 의식적인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 무의식적인 행위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대중문화는 대중의 감수성이나 취향, 행동양식에 무의식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중문화의 사회적 영향이 중요한 것도 바로 대중문화가 지닌 이런 일상성 때문이다. 사람들의 취향이나 감성은 다분히 일상적인 문화 환경 속에서 형성된 것이지만 그것이 너무나 일상적으로 가까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영향을 인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대중문화를 수용하고 소비하는 행위를 통해 사람들의 정체성이 표현된다. 사람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변수는 세대, 계급, 성별, 인종, 지역 등으로 다양한데 대중문화는 그런 다양한 집단들의 정체성이 부딪히고 갈등하며 타협하는 장소가 된다. 대중문화가 정체성 갈등의 장이라는 사실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특히 세대 간의 문화정체성 갈등과 관련해서다. 1950년대 서구 사회에서 로큰롤 음악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이 크게 부각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 청년 세대의 문화, 1990년대 청소년 세대의 문화가 사회적 쟁점이 되었던 예가 있다. 시대 상황에 따라 노동자 문화, 여성 문화, 청소년 문화, 혹은 다양한 층위의 지역 문화가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결국 대중문화는 수많은 부분 문화들을 가지고 있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과 투쟁, 타협이 이루어지는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영역이다.
매스커뮤니케이션으로서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로부터 시작된다. 이 시기에 일제의 식민지배 하에서 제한된 범위에서지만, 자본주의적 발전이 이루어지고 현대적인 매스미디어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1920년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 대표적인 민간 신문이 창간되었고, 1927년에 콜롬비아, 1928년에 빅터 등 외국 음반회사의 지사가 설립되었으며, 1933년에는 한국인에 의해 오케(Okeh)레코드사가 설립되었다. 1927년 2월 JODK라는 호출부호로 경성방송국이 최초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였다. 영화의 경우 윤백남이 만든 〈월하의 맹서〉가 1923년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조선총독부에서 저축 장려를 목적으로 만든 영화였다. 한국인이 제작한 최초의 영화는 1924년의 〈장화홍련전〉이며, 당대의 천재 영화감독으로 알려진 나운규의 〈아리랑〉은 1926년에 상영되어 큰 인기를 모았다.
1930년대는 한국에서 현대적 대중문화가 다양하게 등장하고 특히 도시 지역의 대중에게 크게 유행하면서 이른 바 모던보이와 모던걸이라는 유행어가 등장했던 시기이다. 이 시기 크게 유행했던 대중가요는 주로 일본 가요의 영향을 받은 엔카 풍의 트로트 가요였다. 대중가요를 비롯한 일제강점기의 대중문화에서는 크게 두 가지 정서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나는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의 비애이고, 또 하나는 고향을 떠나 방랑하는 나그네의 서러움이다. 이는 모두 식민지 상황의 비극성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해방이 된 후에도 대중문화의 가장 중요한 정서적 내용으로 지속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 당국에 의해 대중문화 산물에 대한 검열과 함께 금지와 압수 등 억압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해방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지속되었다.
일제강점기의 대중문화가 주로 일본 문화의 영향 속에서 형성된 반면, 해방 후 미군정기와 한국 전쟁, 그리고 195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 대중문화는 급속히 밀려들어오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특히 한국전쟁은 다수의 대중들에게 미국에 대한 맹목적 친밀감과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 심리를 형성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또한 전쟁과 분단을 겪으면서 대중문화 전반에 친미주의와 반공주의의 이데올로기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1960년대 군사 정권에 의해 급속한 산업화와 근대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매스미디어가 확산되었다. 상업 라디오 방송으로 1961년 서울의 문화라디오, 1963년 동아 라디오, 1964년에 동양 라디오가 개국하였다. 또 1961년 KBS TV, 1964년 상업방송인 TBC TV, 1970년에 MBC TV가 개국하면서 본격적인 TV시대가 개막되었다. 또한, 1968년 『선데이서울』이 창간된 것을 비롯해 대중적 주간지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대중문화의 시대가 열렸다. 그와 함께 대중문화는 한층 강력한 정치적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박정희 정권에서 전두환 정권에 이르는 군사 정권 기간 동안 정부는 다양한 검열 기구를 통해 대중문화에 대한 사전 사후 검열을 시행했다. 영화 필름은 검열의 가위질에 의해 재단되었고, 많은 대중가요들이 금지곡으로 지정되어 대중들이 향유할 수 없도록 했다.
당시 정부 정책을 찬양하는 관제 대중문화들이 육성되기도 했다. 대중가요 음반에는 정부에서 지정한 건전가요 가운데 하나가 반드시 들어가야 했고, 유신 정권의 정책을 찬양하는 영화를 우수영화로 지정하여 영화 제작사에 외국 영화 수입권을 주기도 했다. 1970년대 초에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장발과 통기타 가요로 상징되는 청년문화가 크게 유행했는데, 이 역시 당시 정부의 억압 정책에 의해 사실상 강제 퇴출되어야 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은 정치적이거나 사회비판적인 대중문화는 철저히 탄압했지만 한편으로 소비적이고 향락적인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방관하는 정책을 폈다. 그 결과 강남의 유흥가가 크게 발달하면서 향락 문화가 번성했다. 1980년대에는 경제성장과 함께 10대 청소년 계층이 중요한 대중문화 소비자로 등장하기도 했다. 1970, 1980년대에는 군사 정권의 억압에 저항하는 사회운동과 문화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특히 1980년대에는 다양한 민족문화운동 단체가 등장해 상업적 대중문화와 다른 문화 산물들이 제도권 미디어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유통망을 확보하면서 활발히 생산되기도 했다.
1987년 6월 시민항쟁 이후 한국 사회가 급속히 민주화되면서 대중문화를 둘러싼 환경도 급변했다. 정치적 검열이 약화되면서 시장과 자본의 힘이 상대적으로 커졌고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대중문화를 생산 유통하는 미디어가 빠르게 늘어났으며 문화산업과 시장의 규모가 급성장했다. 특히 1990년대 들어서는 10대 청소년들의 문화가 대중문화 시장의 주류로 떠올랐다. 특히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디지털 문화, 온라인 문화, 모바일 문화가 대중문화의 중요한 영역으로 부상했고, 이에 따라 대중문화 산업 전반이 크게 변화했다. 비디오, 음반 등 패키지 형태의 문화 상품을 파는 산업이 현저히 약화된 반면 온라인과 모바일 등 통신망을 통한 문화 유통의 비중이 커지면서 산업의 구조가 달라졌고 그와 함께 대중의 일상적인 문화 수용이나 소비 방식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