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충청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제천에서 어상천 방면으로 가는 국도의 우측편 야산 중턱에 북향으로 건립되었는데 진주강씨 문중에서 자녀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약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평면을 구획한 후 중앙 1칸에 우물마루의 대청을 만들었는데 대청과 툇마루 사이에 사분합 띠살문을 달아 필요할 때는 이 곳을 마루방으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대청 양편에는 1칸씩의 온돌방을 대칭적으로 들였는데 우측 온돌방 앞에는 온돌아궁이의 함실을 설치하기 위하여 대청 전면에 있는 툇마루 면보다 마루높이를 약간 올려 누마루를 만들었다.
구조는 낮은 기단위에 덤벙주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는데 기둥머리에는 장방형 모양의 양봉(樑棒)을 건물 내,외 방향으로 끼워 퇴보의 끝부분을 보강하도록 하였다.
지붕틀은 기둥위에 퇴보와 대들보를 걸고 그 위에 다시 종보를 놓은 5량가구로서 종보 위에 제형대공을 세워 종도리와 함께 지붕무게를 받도록 하였는데, 특히 제형대공에는 초각을 한 장식 부재를 도리방향으로 끼워 장식을 하여 특이하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고 건물 내부의 중도리에 ‘博約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조선 말기의 유학자이며 의병장이었던 유인석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야산 중턱에 북향으로 배치되어 있는 재실로서 규모는 작으나 간결하면서도 소박한 구조미를 보여 주고 있는 재실건축으로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