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성주(星州). 아버지는 박이현(朴而絢)이다.
무과에 급제, 1620년(광해군 12) 옥구현감을 거쳐 창성부사(昌城府使)를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남이흥(南以興)·정충신(鄭忠信) 등과 함께 반란군의 뒤를 따라 황해도 황주의 신교(新橋)에 이르러 이들과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였다. 이에 관군의 선봉장이었던 박영서는 단신으로 말을 몰아 적중에 돌입하여 이괄을 잡으려 하였으나 오히려 말이 넘어져 포로가 되었다. 이괄을 보고 “조정이 너를 부원군에 봉하고 부원수를 시켰는데 무엇이 부족하여 배반하였느냐.”고 꾸짖었다. 이괄과 한명련(韓明璉)이 박영서의 용기를 아껴 백방으로 회유하였으나 굴하지 않다가 살해되었다.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