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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학세(方學世)

      북한인물

       해방 이후 최고재판소 부소장, 중앙재판소 소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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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해방 이후 최고재판소 부소장, 중앙재판소 소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소련 출생. 광복 전 소련 정보기관 간부로 복무하였다. 그 뒤 북한에 들어가 1947년 5월 북한의 첫 정권기관인 북조선인민위원회 내무국 정보처장으로 활동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948년 3월 제2차 당대회에서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9월 내무성 정치보위국 국장에 임명되었다. 1951년 3월부터 1952년 10월까지 1년여간 사회안전상을 지냈고, 사회안전상에서 해임됨과 동시에 내무상에 임명되었다.
      1956년 4월 제3차 당대회에서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고, 1966년 11월부터는 노동당 연락국 정보부장을 지냈다. 1970년 11월 제5차 당대회에서 당 중앙위원에 재임되었다. 또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에서도 당 중앙위원에 연임되었다. 본격적인 법조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 11월부터이다.
      당시 최고재판소 부소장에 임명되었고, 1972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제5기 1차 회의에서 최고인민회의 법안심의위원 겸 중앙재판소 소장에 전격 기용되었다. 1982년 4월 또다시 중앙재판소장에 연임되었고, 이 때 북한 최고의 훈장인 ‘김일성훈장’을 받는 등 능력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2년 뒤인 1984년 3월에는 70회 생일을 맞아 ‘노력영웅’ 칭호와 함께 ‘국기훈장 제1급’을 수상하였다. 1986년 12월 최고인민회의 법안심의위원 겸 중앙재판소 소장에 재기용되었다.
      한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도 활동하였는데, 1948년 8월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에 선출된 것을 시작으로 1957년 8월 제2기 대의원, 1967년 11월 제4기 대의원, 1972년 12월 제5기 대의원, 1982년 2월 제7기 대의원, 1986년 11월 제8기 대의원을 역임하였다. 사망 당시 노동당 중앙위원 겸 중앙재판소 소장 직책을 갖고 있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및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는 공동명의로 부고를 발표, “다년간 사회안전 부문과 사법검찰 부문의 책임적 위치에서 사업하면서 내외 원수들의 침해로부터 혁명의 전취물을 지키고 인민정권을 강화하며 나라의 법질서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쳤으며 우리 당의 통일단결을 옹호 고수하는 데 적극 이바지하였다.”고 애도하였고, 박성철(朴成哲)을 위원장으로 하는 장의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01년)
      심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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