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에서 서남쪽으로 23.3㎞ 떨어져 있고, 노화도 남서쪽 1.1㎞ 지점에 있다. 동경 126°37′, 북위 34°06′에 위치한다. 면적은 32.99㎢, 해안선 길이는 41.0㎞이다. 2007년 말 현재 인구는 2,799명(남 1,421명, 여 1,378명), 세대수는 1,111호이다. 윤선도(尹善道) 유적지로 유명하다.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2008년 1월 8일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옛날 영암(靈巖)의 한 부자가 선친의 묘자리를 잡기 위해 풍수지리에 능한 지관을 불렀는데, 지관이 이 섬을 두루 살핀 뒤 ‘십용십일구(十用十一口, 甫吉)’라는 글을 남기고 갔다.
이 글의 뜻을 풀기 위해 월출산 선암사의 스님에게 [내용]을 물으니 섬 내에 명당자리가 11구 있는데 10구는 이미 사용되었고 나머지 1구도 이미 쓸 사람이 정해졌다고 풀어 보길도라 불렀다고 한다.
지질은 완도, 청산도, 노화도와 같이 백악기 또는 제3기에 속하는 의탄질유문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형은 남쪽의 적자봉(赤紫峰, 425m), 동쪽의 광대봉(廣大峰, 311m), 서쪽의 망월봉(望月峰, 364m) 등 전역에 산지가 발달하고 있으며 각 사면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섬 중앙에 협소한 저지가 있어 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은 난류의 영향으로 온화한 해양성기후가 나타나며, 1월 평균기온 0.1℃, 8월 평균기온 25.3℃, 연강수량 1,285㎜, 연강설량 11㎜이다. 상록광엽수립이 분포하는 난온대성 기후대에 속한다. 식생은 적자봉을 중심으로, 남사면에는 붉가시나무군락이, 북사면에는 구실잣밤나무군락과 곰솔군락이 분포하고 있으며, 부용리와 부황리 마을 주변에는 동백나무군락이 소규모로 잘 보존되어 있다. 참가시나무군락은 부황리 마을 남쪽의 계곡과 능선 부위에, 소누마 · 구실잣밤나무 군락은 부용리 동사면에, 까마귀쪽나무군락과 순비기나무군락은 예송리 해변가에 소규모로 분포한다.
1694년 이후 영암군 관할에 속하여 매년 조세를 징수하여 오다가 1870년(고종 7)에 면민들의 진원으로 방진(防鎭)을 설치하여 삼도진(三道鎭)이라 칭하였다. 1897년완도군으로 부속되면서 노화면 · 보길면 · 임도면으로 분리되었다. 광복 후 3개 면이 노화면으로 다시 통합되었고 1980년 읍으로 승격, 1982년보길출장소가 설치되고 1986년보길출장소가 보길면으로 승격되었다.
2007년 말 현재 경지 면적은 논 0.78㎢, 밭 3.29㎢, 임야 28.37㎢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 · 보리 · 콩 · 고구마 · 마늘 · 무 · 채소 등이 생산된다. 연안에서는 도미 · 삼치 · 멸치가 어획되며, 전복 · 소라의 해녀 채취 사업이 활발하고 굴 양식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1978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부용동정원은 윤선도(尹善道)의 유적지이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윤선도가 제주도로 가던 중 보길도의 자연경관에 심취되어 부용동에 연못을 파고 세연정(洗然亭)을 세워 선유를 즐기며 불후의 명작인 「오우가(五友歌)」와 「어부사시사(漁夫四時詞)」 등을 남겼다. 현재 쓰이는 섬 내의 지명도 거의 그가 붙인 것이다.
동쪽 선백도 바위에는 송시열비(宋時烈碑)가 새겨져 있으며, 보길나루에서 발견된 조개더미와 예송리에서 표면채집된 유경역자식석촉(有莖逆刺式石鏃)이 있다.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완도 예송리 상록수림이 장관을 이루는 예송리해수욕장은 작은 자갈이 깔려 있고 중리해수욕장도 경치가 빼어나다.
풍어와 도서민의 무사를 기원하는 당제를 매년 섣달 그믐날 모시며 지신밟기와 농악놀이가 행하여진다. 또한, 큰 나무나 바위에 고사를 지내 안녕과 무사고를 비는 풍습이 있다. 북쪽 노화도와 마주한 청별 앞 바다에 매립 사업이 이루어져 행정 관서와 상가가 집중되어 중심지가 되고 있다.
교육 기관으로는 보길초등학교, 보길동초등학교, 예작분교와 보길중학교가 있다.
교통은 목포 · 완도 등에서 여객선이 운행되고 있으며, 해남군 송지면의 땅끝에서도 운항되고 있다. 특히, 여름철에는 증편 운항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