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금도 ()

비금도
비금도
자연지리
지명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면에 있는 섬.
목차
정의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면에 있는 섬.
개설

동경 125°55′, 북위 34°45′에 위치하며, 목포에서 서쪽으로 약 35㎞ 지점에 있다. 자은도(慈恩島)와 도초도(都草島) 사이에 위치하며, 도초도와는 1996년에 준공된 서남문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면적은 45.25㎢이고, 해안선 길이는 64.1㎞이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아노현에, 통일신라시대에는 갈도현에 속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육창현에 편입되었으며, 조선 초기에는 영광군에 속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나주목 관할이 되었으며, 1895년에 지도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무안군에 이속되었으며, 1969년에 신안군이 무안군에서 분군함에 따라 신안군 비금면이 되었다. 지명은 섬의 모양이 큰 새가 날아가는 것처럼 생겼다 해서 비금도라 불린다.

자연환경

지질은 대부분 중생대 백악기의 산성화산암과 유문암(流紋岩)으로 되어 있다. 과거 여러 개의 섬이 연안류에 의한 퇴적으로 육지화되어 곳곳에 구릉성 산지의 형태를 이룬다.

최고봉은 섬의 남서쪽에 있는 선왕산(255m)이고, 동북쪽에 위치한 성치산(城峙山, 164m)이 급경사를 이루면서 해안과 접한다. 중앙에는 평지가 분포하며, 간척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농경지와 염전이 넓게 발달해 있다.

동북쪽 해안은 해식애가 발달하였고, 해안선의 만입이 심한 서쪽 해안에는 사빈해안이, 동남쪽 해안에는 염전지대가 있다. 식생은 북가시나무·녹나무·후박나무·동백나무·구실잣밤나무·사철나무 등의 난대성 식물이 자란다. 1월 평균기온은 2.0℃, 8월 평균기온은 25.5℃, 연강수량은 1,357㎜이다.

현황

삼한시대에 떠돌아다니던 유족이 당두마을에 최초로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유배되어 온 벼슬아치들이 가족을 이끌고 와 정착하면서 많은 씨족이 분포하게 되었다. 2009년 기준으로 인구는 3,813명(남 1,902명, 여 1,911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세대수는 1,809세대이다.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토지이용 현황은 논 8.86㎢, 밭 5.07㎢, 임야 20.20㎢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콩·고구마·마늘·양파·시금치 등이 생산된다. 근해에서는 멸치·조기·가자미·장어·갈치·문어·낙지·해삼·새우 등 다양한 수산물이 잡히고, 김과 미역의 양식업도 활발하다.

호남지방에서 해방 이후 처음으로 천일제염이 시작된 섬이다. 북서 해안에는 규사가 풍부하다. 고려시대에 축조된 석성으로 성치산성지(城峙山城地)와 고분이 있고 서산사(西山寺)가 있다. 구림리해수욕장은 약 4㎞의 해안으로 해당화와 주변의 수목이 장관을 이룬다.

교통은 목포에서 여객선·쾌속선 및 도선이 운항된다. 교육기관으로는 비금초등학교와 비금동초등학교, 비금중학교, 비금고등학교가 있다.

참고문헌

『신안통계연보』(신안군, 2010)
『한국지명유래집』전라·제주편(국토지리정보원, 2010)
『한국도서백서』(전라남도, 1996)
『도서지』(내무부, 1985)
『내고장 자랑』(신안군, 1982)
『신안군지』(신안군, 1981)
해양수산부 연안포탈(www.coa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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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강승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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