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5칸, 측면 2칸의 단층팔작지붕 건물. 1982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의 건물로 외동헌(外東軒) · 객사(客舍) · 내동헌 등 3동의 건물이 남아 있다.
외동헌은 부여현의 공사를 처리하던 현청(縣廳)으로 1869년(고종 6)에 세워져 1880년에 중수되었으며, 1985년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다시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제시대의 건축용 석재로 낮은 기단을 구획하고 역시 방형 · 원형의 백제시대의 주춧돌을 이용하여 방형기둥을 세웠다. 앞면에는 퇴주(退柱)를 세워 툇간(退間)을 두었다.
서쪽 3칸 통간(通間)은 대청으로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우측 2칸은 온돌방을 만들고 그 전면에는 툇마루를 놓았다. 또 대청에는 판벽을 쳤다. 기둥 위에는 공포가 없으며 팔작지붕이다. 이 건물에는 ‘超然堂(초연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객사 역시 1869년에 세워졌는데, 중앙의 정당(正堂)을 한층 높게 세우고 그 좌우에는 동서익실(東西翼室)을 두었다. 정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맞배지붕 건물이며, 동서익실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팔작지붕 건물이다.
내부 칸막이가 모두 철거되어 박물관진열실로 사용하던 것을 1988년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중수하였는데, 좌우익실에 온돌방이 있고 정당은 대청으로 마루를 깔았다.
정당은 출목(出目)이 없는 2익공식 공포(二翼工式栱包)로 되어 있으나, 동서익실은 초익공(初翼工) 계통의 기법을 따랐다. 정당 미간(楣間)에는 화반(花盤 : 주심도리 및 장여를 받는 초새김한 받침)을 1개씩 배치하였으나 중앙칸만은 화반 대신 이익공공포형을 두고 있으며 쇠서[牛舌]에 봉황머리를 조각하였다.
원래의 당호는 부풍관(扶風館)이었으나 지금은 ‘百濟館(백제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초석과 기단석은 모두 백제시대의 것을 사용하였다. 이 밖에 안채인 내동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