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간토기 (붉은 간)

선사문화
개념
청동기시대, 토기의 표면에 산화철 성분의 붉은색 안료를 바르고 마연한 토기.
이칭
이칭
홍도(紅陶), 단도마연토기(丹塗磨硏土器), 적색마연토기(赤色磨硏土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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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붉은간토기는 청동기시대, 토기의 표면에 산화철 성분의 붉은색 안료를 바르고 마연한 토기이다. 청동기시대의 거의 전 시기에 걸쳐 확인되는 붉은간토기는 생활 유적에서도 출토되지만 주로 무덤의 부장품으로서 장송의례와 관련이 깊다. 남한 전역에 분포하지만 서부 경남 지역에서 많이 출토된다. 청동기시대 늦은 시기에는 플라스크모양붉은간토기를 비롯하여 지역적 특색을 보이는 것이 다수 등장하며, 일본 열도의 야요이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정의
청동기시대, 토기의 표면에 산화철 성분의 붉은색 안료를 바르고 마연한 토기.
개요

붉은간토기는 청동기시대, 토기의 표면에 산화철(酸化鐵, Fe2O3) 성분의 안료를 바르고 매끄러운 도구로 문질러서 붉은 빛깔의 광택이 나는 토기를 가리키며, 적색마연토기(赤色磨硏土器) · 단도마연토기(丹塗磨硏土器) · 홍도(紅陶)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편, 신석기시대에도 표면에 붉은색의 안료를 바른 토기가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출토되었다. 이 시기의 토기는 청동기시대처럼 표면을 마연한 것도 있지만 안료를 바른 후 마연하지 않은 것이 많아, 주칠토기(朱漆土器) · 단도토기(丹塗土器) · 적색토기(赤色土器)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리고 청동기시대의 붉은간토기처럼 고운 점토를 사용한 것은 아니며 두께도 두껍다. 주로 얕은바리모양토기에 많고 구획된 단위나 공간에만 안료를 칠하여 무늬의 효과를 내는 것도 있다. 주로 동북 지역과 동해안 및 남해안 일대에서 출토되며,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양양 오산리 · 울진 죽변 · 부산 동삼동 · 통영 연대도 유적 등이 있다.

제작 방식 및 용도

붉은간토기는 청동기시대의 일반적인 민무늬토기[無文土器]에 비해 매우 고운 점토를 사용하였으며, 두께도 얇은 편이어서 상당히 정교한 제작 기술을 필요로 하였다. 토기의 바닥이 편평한 것은 주로 주거지에서, 둥근 것은 무덤에서 출토되는 경향이 있으며, 종류로는 항아리모양토기[壺形土器] · 바리모양토기[鉢形土器] · 굽다리토기[臺附土器]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둥근 바닥의 작은 항아리모양토기이다.

붉은간토기의 용도로 주거지 출토품은 생활의례, 무덤 출토품은 장송의례와 관련이 깊다. 특히 장송의례의 경우 붉은간토기 속에 곡물 또는 망자의 영혼을 담았다고 보기도 하는데, 이는 농경사회적인 조상신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출토 지역과 특징

시기적으로는 청동기시대의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거의 전 시기에 걸치며, 송국리문화로 대표되는 늦은 시기에 가장 성행하였다. 이른 시기에는 긴목항아리[長頸壺]와 굽다리토기가, 늦은 시기에는 짧은목항아리[短頸壺]가 유행하였다.

한반도 동북 지역에도 분포하고 있어 계통적으로는 그와 관련된 문화 요소로 알려져 왔다. 남한 전역, 특히 영남 지역에서 많이 출토되는데, 그중에서도 서부 경남 지역의 출토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리고 청동기시대의 늦은 시기에는 지역적으로 한정된 범위에서만 출토되어 지역적인 특색을 드러내는 사례도 적지 않다.

우선 특이한 모양 때문에 예전부터 주목되었던 것으로 플라스크모양붉은간토기가 있다. 이것은 둥근 바닥에서 뚜렷하게 꺾이면서 몸체로 이어지며 목 아래에 어깨가 형성되기도 한다.

부여송국리선사취락지에서 처음 알려진 이래 금강 유역을 중심으로 주거지와 구덩이[竪穴] 등에서 출토된다. 이 토기의 발생에 대해서는 대동강 유역 미송리형토기(美松里型土器)의 영향으로 보는 견해와 이전 시기 남한 지역의 붉은간토기 항아리에서 변화하였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진주 지역의 경우 남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여 지역색을 보이는 것이 있다.

하나는 진주식 붉은간토기[晋州式赤色磨硏土器]라고도 하는 것으로, 몸체에서 아가리 쪽으로 곡선적으로 연결되어 뚜렷한 목이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또 하나는 횡침선문붉은간토기[橫沈線文赤色磨硏土器]라고 불리는 것인데, 아가리 바로 아래에 선이 한 줄 돌아가고 바닥이 편평한 얕은 바리 모양의 토기이다.

함안 · 창원 · 김해 지역에는 함안식붉은간토기[咸安式赤色磨硏土器]로 불리는 것이 있다. 이것은 둥근 바닥에 타원형의 몸체, 안쪽으로 경사진 목, 몸체와 목의 경계 부분 안쪽에 꺾임이 분명한 모양의 토기를 가리킨다.

함안식붉은간토기는 모두 무덤에서만 출토되고 있어서, 이것이 분포하는 공간적 범위는 장송의례에 같은 토기를 이용하였던 영역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청동기시대 무덤에서 출토되는 붉은간토기는 주로 바닥이 둥근 것인 데 비해, 부산 지역에는 바닥이 편평한 항아리모양토기가 출토되며, 아가리 부분에 구멍무늬가 새겨지기도 한다. 이에 비해 대구 지역에는 몸체 양쪽에 작은 꼭지 모양 손잡이가 달려서 양이부옹(兩耳附甕)으로 불리는 것이 출토된다.

의의와 영향

이상과 같은 붉은간토기는 조몬시대[繩文時代]에서 야요이시대[彌生時代]로 전환하는 시점의 일본 열도에도 전래되어 야요이문화 개시기의 주요한 요소가 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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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미디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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