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덕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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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허욱(許昱)이 창시한 증산교(甑山敎) 계열의 신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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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20년 허욱(許昱)이 창시한 증산교(甑山敎) 계열의 신종교.
내용

허욱은 1887년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에서 태어나, 농사를 지으면서도 한학과 오행설 등을 깊이 연구하였다고 한다.

1914년경 보천교(普天敎)를 알게 된 뒤 증산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 제화교(濟化敎)를 세운 이치복(李致福)과 함께 1920년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서상범(徐相范)의 집에서 삼덕교의 전신(前身)인 삼동도방(三棟道房)을 조직하였다.

1924년 주자(朱子)의 「무이구곡시 武夷九曲詩」의 구곡을 따라 삼동도방을 구곡도방으로 고치고, 1928년 구곡의 곡주(曲主)를 임명하는 등 교단조직을 확고하게 하였다.

1937년 출정군인위문단(出廷軍人慰問團)을 조직, 중국에 보내어 전몰장병위령제를 가장한 신명초혼제(神明招魂際)를 지내는 등, 여러 행사를 함으로써 증산사상을 전하고자 했다.

그러나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독립운동혐의를 받아 교단 간부와 교인 등 80여 명이 검거되고, 허욱도 1939년 광주경찰서에서 옥사하자 교단은 해체되고 말았다.

1948년 서상범 등이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김제군 봉남면 평사리로 옮겨 대규모 성역 동산을 조성하고, 단군정신선양회에 가입, 활동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신앙의 대상은 무극신대도덕강성상제(無極神大道德姜聖上帝)이며, 1961년부터는 삼위일체(三位一体)신앙이 강조되어, 단군 · 수운 · 증산의 삼단신앙체계를 이루고 있다.

옥황상제는 우주를 주재하고 세계를 재조판하는 권능을 가진 존재로 비인격적이며 불가시적이다. 재래의 민간신앙, 즉 도참설 · 정감록 · 풍수설 등도 인정, 수용하고 있으나 증산사상이 기본을 이루고 있다.

교리의 근간은 삼덕인데, 삼덕이란 지덕(至德:道脈) · 민덕(敏德:행동, 국가민족을 위한 활동) · 효덕(孝德:혈맥 존중)이다. 인간의 구원은 심신을 특수하게 단련하는데서 얻어지며, 만물의 원천은 기(氣)이고 기에서 만물이 화생(化生)한다고 본다.

사람은 누구나 수(壽)를 타고나는데 날 때부터 모든 운명이 정해지지만, 수련에 의하여 그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가르친다.

매년 네 차례의 정례치성이 있고, 기본경전으로는 ≪생화정경 生化正經≫ · ≪남송실기 南松實記≫ · ≪삼덕교사≫ 등을 사용한다.

참고문헌

『증산교개설』(홍범초, 창문각, 1982)
「천지의 새소식 도식 문명」(증산종단 삼덕교, 1992)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한국민족종교총람』(사단법인 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류병덕·양은용,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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