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경상북도 민속자료(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원래 1601년에 창건한 것을 1661년에 현 위치로 이건했다고 가전(家傳)해 온다. 1781년 중수 시 일부를 헐어 내어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임진왜란 중에 의병을 일으켜 38세에 대장이 되어 싸운 선비 조정(趙靖)이 선조 34년(1601)에 창건했다 한다.
조정은 46세 때 사마시에 합격한 이래 여러 고을의 군수를 역임하였다. 인조를 호종하면서 이괄의 난을 겪고, 남한산성 전투에도 참여하였다. 그런 공로가 인정되어 그가 별세하자 이조참판으로 추증되었다..
조정은 1628년에 다락집형으로 살림집을 짓는다. 운평리의 유명한 양진당(養眞堂)인데, 이 건물은 한국 살림집 발전 과정과 역사 규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에 속한다. 집주인으로서 집에 대한 식견이 뛰어났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네모난 기둥을 다듬으면서 네모난 네 귀퉁이를 날카롭게 두지 않고 모를 접었다.
그야 집 짓는 대목(大木)의 솜씨이긴 하지만, 자칫 기둥이 가늘어 보일 가능성 때문에 집주인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했다면 그런 시공은 가능할 수 없었다. 이 모접이 기법은 양진당과 오작당에서 다 볼 수 있으나 인근의 다른 집에서는 보기 어렵다. 오작당과 양진당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오작당 울타리는 남북이 길고 동서가 짧은 직사각형 윤곽을 지니도록 집터가 반듯하다. 대문을 들어서면 중문간채가 있고 동편으로 사랑채가 이어져 있다. 본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뒤로 방이 있다. 전체 평면은 ㄱ자형이다.
중문 안에 남향한 안채가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이다. 평면은 T자형에 속하는데 부엌과 건넌방쪽에서 1칸씩 돌출한 구조이다. 부엌은 위에 다락을 설치했는데 앞에서 보면 마치 2층집처럼 보여서 매우 재미있게 보인다.
대청은 6칸, 부엌에 접속해 2칸의 안방이 있는데, 집사람들 설명으로는 당초엔 거기도 마루가 깔려 있었다고 한다. 대청 다음이 건넌방인데 평면이 겹집형이어서 건넌방은 남북으로 아랫방 윗방이 구조되고 아랫방 앞에 1칸의 툇마루가 설비되어 있다.
상주 지역은 낙동강 건너의 안동 지방과 달리 개방성이 강하며 대부분 홑집인데, 오작당 안채는 두 줄 배기 겹집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겹집의 분포가 어떤 의미를 지녔느냐는 지역 특징을 고찰할 때, 오작당은 홑집 일색인 지역에 겹집이 현존한다는 점에서도 학문적인 가치가 높다.
양진당도 다락집 형태이면서 겹집 평면이라는 점에서 조정은 겹집을 대단히 선호하는 성향의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집주인의 성향에 따라 지역적인 경향에 구애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한 사례를 보였다고 하겠다. 기둥 칸살은 조선시대 전형인 8.2영도척(약 2.5m)이고 기둥 높이는 9.5척(약2.88m) 가량이다.
이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색은 부엌 위로 만든 다락으로 해서 그 부분이 마치 2층인 듯이 보이게 된 것이다. 안채 동북 귀퉁이에 따로 일곽을 만들어 낮은 담장을 쌓고 그 안에 사당인 가묘(家廟)를 조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