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선조 25) 4월 14일 부산진에 상륙한 왜군은 삼로(三路)로 나누어 북상하고 있었다. 같은해 4월 17일 이일(李鎰)을 순변사(巡邊使)로 임명하고, 성응길(成應吉)·조경(趙儆)을 각각 좌우방어사(左右防禦使)로 삼아 영남으로 급파하였다.
이들은 문경을 거쳐 23일 상주에 도착하였는데, 상주목사 김해(金懈)는 이미 도주하고, 판관 권길(權吉)만이 비어 있는 고을을 지키고 있었다. 이일은 곡식을 풀어 백성을 모으고, 흩어진 군졸과 무기를 수습하여, 상주 북방 북천(北川)에 진을 치고, 고니시(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에 대항하였다.
이 싸움에서 이일과 종사관 윤섬(尹暹)·박호(朴箎), 찰방 김종무(金宗茂), 병조좌랑 이경류(李慶流) 등이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대패하고, 이일만이 퇴로를 헤치고 문경으로 빠져나옴으로써 상주는 적의 수중에 함락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