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선조 25) 4월 19일 왜장 구로다(黑田長政)가 이끈 제3군의 주력은 부산포 앞바다에서 해상으로 죽도(竹島)에 상륙하였다.
죽도는 낙동강 하류에서 김해강 지류가 합치는 곳으로 능히 전선이 정박할 수 있었다. 김해부사 서예원은 이곳에 초선(哨船)을 이미 띄워놓고 적정을 탐색중이었다. 적은 먼저 이 배를 탈취하고 감시병을 쫓아 김해성에 도달하고는 성을 포위하였다.
이 때 부사는 비상태세를 갖추고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고 있었다. 적은 조총으로 집중사격을 계속하면서 공격을 가하여,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성안에는 군사가 적고 외부로부터 지원이 없어 사기는 더욱 떨어졌다.
이 때 적은 성벽이 높고 못[濠池]이 깊어서 쉽게 함락하기가 힘들어 보였으므로 성 주변에 있는 보리이삭과 볏짚을 날라다 야음을 틈타 비밀리에 못을 메우기 시작하여 그 높이를 성과 같게 하고 여기서 활과 총을 난사하였다. 겁에 질린 초계군수 이유검(李惟儉)이 먼저 도망하자 부사도 도망하고 따라서 군민의 일부도 흩어졌다.
왜군이 못을 메운 동문 쪽 성벽을 넘어 난입하자 끝까지 성을 지키고 있던 군민들은 적과 격렬한 백병전을 전개하여 쌍방간에 많은 희생자를 내고 끝내 성은 함락되었다. 적은 다시 창원을 공략하고 뒤이어 영산ㆍ창녕ㆍ현풍을 거쳐 북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