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여보(汝寶), 호는 박연정(博淵亭). 아버지는 좌찬성 김희증(金希曾)이다.
1580년(선조 13) 무과에 급제, 옥포만호(玉浦萬戶)가 되었다. 인품이 충직 순박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밀양성이 함락된 뒤 밀양부사로 임명되어 분전하였다. 이어 울산군수로 전임되고, 울산성전투에서 도원수(都元帥) 권율(權慄)을 도와 큰 전공을 세워 당상관에 올랐다.
1599년 성주목사를 거쳐,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되었으며, 1605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이어 경상좌도병마절도사·오위도총부도총관·호위대장을 역임하였으며, 그 뒤 지중추부사에 올랐다. 시호는 양무(襄武)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