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아버지는 지평 김충갑(金忠甲)이며, 형은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이다.
1596년(선조 29) 괴산(槐山) 선봉장으로 창의, 모병한 군사를 거느리고 왜적을 격파하였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관찰사의 천거로 별장에 발탁되었다. 이듬해 정유재란 때에는 통영군관(統營軍官)으로 관군과 의병을 통솔하여 창원·옥포 등지에서 왜군 24명을 죽이는 군공을 세웠다.
난이 끝난 뒤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으로 승진되었으며, 1605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뒤에 창성부첨절제사(昌城府僉節制使)로 나갔다가 1627년 정묘호란을 당하여 성이 함락되자 아들과 함께 포로가 되어 순절하였다. 1683년(숙종 9) 국가에서 향리에 정문을 세우게 하고 병조참판을 추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