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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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신외리 터주서낭
화성 신외리 터주서낭
민간신앙
개념
민간에서 마을의 수호신으로 받들어지는 동신(洞神). 성황.
이칭
이칭
성황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서낭은 민간에서 마을의 수호신으로 받들어지는 동신(洞神)이다. 선왕, 성황(城隍)이라고도 한다. 신수(神樹)에 잡석을 쌓아 놓은 돌무더기나, 신수에 당집이 복합된 형태의 서낭당에 깃들어 있다고 믿어지는 신격이다. 강원도와 경상도 일대에는 인격적 형태인 골매기서낭이 있다. 골매기 서낭은 남서낭과 여서낭으로 설정되어 풍요를 기원하는 결합 의례가 있다. 또한 골매기서낭은 입향시조와도 결합되어 있어 조상숭배 신앙과 관련을 지니고도 있다. 바닷가에서는 배서낭을 섬기는 습속이 있다. 서낭은 마을수호신, 풍요신, 조상숭배신앙을 함께 지닌 신앙 형태로 볼 수 있다.

목차
정의
민간에서 마을의 수호신으로 받들어지는 동신(洞神). 성황.
내용

신수(神樹)에 잡석을 쌓아 놓은 돌무더기나 신수에 당집이 복합된 형태의 서낭당에 깃들어져 있다고 믿어지는 신격으로 성황(城隍) · 선왕 등으로도 불린다. 마을 수호신적 성격이 강하지만 경계신적 성격도 지니며, 성황제에 대한 문헌기록을 보면 전쟁수호신으로도 믿어졌음을 알 수 있다.

서낭신의 내력은 고려 문종 때 신성진(新城鎭)에 성황 신사(神祠)를 설치하여 위엄 있게 숭배하였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도 조선시대에 서낭신을 섬긴 일이 기록되어 있다.

이익(李瀷)『성호사설(星湖僿說)』에 보면, “우리 나라 풍속이 귀신을 신봉하기 좋아하여 혹은 화간(禾竿)을 만들고 지전(紙錢)을 달아 촌무(村巫)들이 서낭신이라 칭하여 섬긴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 밖에도 서낭에 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읍지(邑誌) 등에도 보인다.

서낭신앙의 기원에 대해서는 우리 고유의 신앙 형태라는 주장과 중국의 성황이 이입되어 형성된 것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전자는 손진태(孫晉泰)조지훈(趙芝薰) 등의 주장으로, 서낭이 고대의 경계표 돌무더기에서 점차 경계신의 처소, 제단 등으로 인식된 것이라 보며, 단군신화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한다.

후자는 이능화(李能和)『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에서 주장한 것으로, 성황은 성지(城池) 곧 성을 보호할 목적으로 성 주위에 도랑을 파서 물을 채우는 것으로 천자(天子)가 8가지 대제(大祭) 중 하나로 올리는 수용(水庸)이 북제(北齊)시대에 성읍의 수호신으로 신앙되었으며 송대(宋代)에는 천하에 두루 퍼졌는데, 이러한 성황신앙이 전래되어 우리 나라 곳곳의 서낭신앙을 있게 했다는 것이다.

이 외에 몽고의 ‘오보’로부터 전래되어 형성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오보란 흙이나 돌을 원추형으로 쌓아 올리고 그 상부에 버드나무 한 묶음을 꽂아두거나 목간을 세워 놓은 몽고의 신앙 형태로, 여행의 안전을 위해 돌을 던진다거나 오보의 나뭇가지에 포백편(布帛片) · 오색천을 묶는 헌납속, 돌무더기를 신의 거처로 인식하여 제를 올리는 점이 흡사하다. 때문에 13, 4세기 몽고와 문화적 · 정치적 관계가 깊었던 시대에 오보신앙이 전래되어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견해들 중 어떤 것이 타당한지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외부에서 유입된 것과는 다른 우리 고유의 서낭신앙이 있었는데 외부에서 성황 또는 오보신앙이 유입되면서 그 신앙의 성격이나 기능이 유사하여 서로 습합(習合)하게 된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현재 서낭의 형태는 다양하여 서낭나무인 신수(神樹)와 돌무더기가 복합된 경우, 돌무더기 · 서낭나무에 천조각을 늘인 경우, 서낭나무와 당집의 복합 경우, 입석(立石)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밖에도 신격의 인격적 형태로 구체화된 것은 강원도와 경상도 일대의 골매기서낭으로 남서낭과 여서낭의 짝으로 설정된 경우, 여서낭으로 설정된 경우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여서낭으로 설정된 경우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남서낭과 여서낭으로 설정된 경우는 풍요를 기원하는 결합의례가 있다. 이러한 사례로 서낭은 마을 수호신의 성격뿐만 아니라, 풍요신의 성격도 아울러 지닌다.

또한, 골매기서낭은 입향시조(入鄕始祖)와도 결합되어 있어 조상숭배신앙(祖上崇拜信仰)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 것으로 추측된다. 서낭은 본디의 마을수호신 신격이 여타의 신격과 결합되어 복합적 신앙대상으로 변화된 신격이다. 이러한 신격이 탈춤에도 흔적을 보이고 있어서 민간 연희의 생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편 이러한 내륙지방의 서낭신앙과는 달리 바닷가에서나 도서지역에서는 배서낭을 섬기는 습속이 있다. 배서낭은 항해의 안전과 풍어를 보장해주는 신격으로, 배와 서낭이 복합된 명칭이라 할 수 있다.

이 때 서낭을 선왕(船王)으로 표기하여 배서낭의 신체로 삼는 경우가 많아 서낭과는 별개의 어원을 지닌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배의 안녕과 풍요를 관장한다는 점에서 그 성격은 대체로 동일함을 알 수 있다.

배서낭의 신체는 특별한 신체 없이 숭앙관념만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길지(吉紙)나 지방(紙傍), 뱃기, 서낭단지, 서낭함을 모시는 형태로 나타난다. 서낭은 마을수호신 · 풍요신 · 조상숭배신앙을 함께 다루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신앙형태이다.

참고문헌

『한국민간신앙연구』(김태곤, 집문당, 1983)
『한국민속학논고』(장주근, 계몽사, 1986)
『한국문화사서설』(조지훈, 탐구당, 1989)
『서낭당』(이종철·박호원, 대원사, 1994)
「조선무속고」(이능화, 『계명』 17, 계명구락부, 1927)
「조선의 누석단(累石壇)과 몽고의 악박(鄂博)에 취하여」(손진태, 『조선민족문화의 연구』, 을유문화사, 1948)
「한국 어로민속의 일고찰」(박계홍, 『무속신앙,』 교문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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