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26장(52면). 목판본. 이 금보의 끝에 적힌 발문에 의하면, 임진왜란 와중에서 전라도 남원에 피란왔던 양덕수가 그 당시 임실현감으로 있었던 김두남(金斗南)의 도움으로 악보를 만들어 출간하게 되었는데, 편찬자의 성을 따라 ‘양금신보’라는 이름으로 임실에서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부분은 금아부(琴雅部)·현금향부(玄琴鄕部)·현금평조산형(玄琴平調散形)·우조산형(羽調散形)·집시법(執是法)·조현법·안현법(按絃法)·타량법(打量法)·합자법으로 구성되었으며, 둘째 부분은 만대엽(慢大葉)·북전(北殿)·중대엽(中大葉, 속칭 心方曲 : 羽調 羽調界面調 平調 平調界面調)·조음(調音, 속칭 다ᄉᆞ림)·감군은(感君恩) 이상 8곡과 발문으로 구성되었다.
거문고의 악곡들은 합자보(合字譜)와 육보(肉譜)의 두 가지 기보법에 의해서 기록되었고, 합자보의 우측에 노래의 가사 또는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의 5성(五聲)이 기록되었다.
이 악보는 다음의 세 가지 점에서 임진왜란 전후의 한국음악사 연구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음악자료의 하나이다. 첫째, 이 금보는 ≪금합자보 琴合字譜≫에 없는 <만대엽>과 <중대엽>의 악곡을 골고루 갖추었으므로 17세기 전후의 가곡사연구에 매우 중요한 다리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 고악보에 전하는 <중대엽>의 평조·우조·평조계면조·우조계면조 이상 네 가지 악조는 조선 전기 이후 악조의 역사적 변천연구에 결정적인 음악자료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셋째, 목판본으로 인쇄되었으므로 필사본으로 전하는 다른 악보보다 세상에 널리 퍼졌고 따라서 후세의 거문고 연주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1959년 통문관(通文館)에서 이병기(李秉岐)의 서문과 이혜구(李惠求)의 해제를 실은 영인본이 출간됨으로써 비로소 보다 널리 소개되었다. 이겸로(李謙魯)가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