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대한제국 도찰사 토포사(討捕使)를 거쳐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을 역임한 후에 고종의 밀조(密詔)를 받아 산남의진대장(山南義陳大將)으로 활약하다 순국한 동엄(東嚴)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용기(鏞基) 부자의 충효정신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3년에 건축한 재사이다.
혜민원(惠民院)총무, 독립회○만민회 등에 참여한 큰아들 용기는 아버지가 의병단을 조직하자 의병대장이 되어 청하○흥해○자양○입암○○일○영천 등지에서 왜병들과 전투하다 전사하였다.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다시 의병장이 되어 싸우다 순국하니 전투에 참여하였다 살아남은 이들이 검단동(檢丹洞)을 충효동이라 개칭하고 양세(兩世)의병대장이라 칭송하였다. 그들이 앞장서서 재실을 짓고 충효재라 하였다.
1978년에 수리하였고 그 때 신축한 대문(호국문)이 현존한다. 재실은 정면 3칸 측면 2칸 홑처마 팔작지붕 구조이며 평면은 좌우에 방을 1칸씩 들인 전형적 재사(齋舍)건물이다. 삼량집이며 자연석을 주초로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