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륜산 용덕사 ( )

용인 용덕사 극락보전 나한상 정면
용인 용덕사 극락보전 나한상 정면
불교
유적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성륜산(聖輪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염거선사가 창건한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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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성륜산(聖輪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염거선사가 창건한 사찰.
개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역사적 변천

신라 문성왕 때 염거선사(廉居禪師)가 창건하였고,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3층 석탑 1기와 보살상, 철인(鐵人) 3위를 조성하면서 중창하였다. 그 뒤 1736∼1795년 사이에 석담(石潭)이 중수하였으며, 1825년(순조 25)에는 정사(淨舍)가, 1884년(고종 26)에는 성월(聖月)이 중수하였다.

내용

용덕사는 1990년에 본래의 사찰이 자리하였던 산 아래에 대웅전을 지으면서 위채와 아래채로 전각이 나누어져 있다. 대중의 대부분은 아래채에서 기거하고 있으며, 위채에는 극락전 · 산신각 · 굴암 등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1.5칸의 대웅전 안에는 2001년 경기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저된 용덕사석조여래입상이 봉안되어 있고 우측에는 57위의 나한상이 있는데, 모두가 화강암 석재로서 백분을 입혔으며, 고려 중기 이전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암굴 입구에는 도선국사가 조성하였다는 보살좌상 1구가 있다. 머리와 오른손이 결손되었지만 반가사유상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정교한 작품으로서, 가슴에 드리워진 영락(瓔珞)이 생동감 넘치는 귀중한 작품이다. 이 암굴에는 1,000년이 다 되어 여의주를 얻은 용이 아버지의 병을 고치고자 치성을 드렸던 처녀에게 여의주를 주어 아버지의 병을 고치게 하였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연유로 용덕사라 하였다는 유래가 있다.

이밖에도 도선국사가 조성하였다는 파손된 3층석탑 1기와 철인 3위 가운데 2위가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의 절터보다 아래쪽에는 옛 절터의 석축이 남아 있다. 3층석탑은 절에서 약 100m 정도 아래쪽에 있는데, 병란을 겪으면서 도굴되고 파괴되었던 것을 뒤에 조합해 놓은 것이다.

또, 현재 석굴에는 높이가 각 48㎝와 44㎝인 철인 2위가 있다. 이는 도선국사가 이곳의 산세와 자리에서 솟아나는 기운으로 말미암아 터가 드세므로 이를 누르기 위하여 조성한 것이라고 하는데, 예로부터 지기(地氣)를 누를 수 있는 것은 쇠[鐵]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철로써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석굴에 안치함으로써 음기를 막도록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철인상의 남녀구분은 확실하지는 않으나 둥근 얼굴모형에 이목구비를 표현하였고, 양손은 모두 형식적으로 배열하였으며 짙은 미소를 띠고 있다.

참고문헌

『용인의 불교유적』( 용인시, 2001)
『전통사찰총서』3(사찰문화연구원, 1993)
『내 고장의 얼』(용인문화원, 1986)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6)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김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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