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이다. 854년(문성왕 16)에 갈양사(葛陽寺)로 창건되었다가 952년(광종 3)에 소실되어 터로만 남았는데, 조선 제22대 왕 정조대에 그 자리에 용주사를 새로 창건하였다.
정조는 즉위 직후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에게 장헌(莊獻)이라는 존호를 올리고, 1789년(정조 13) 서울 동대문구에 있던 묘를 경기도 화성으로 옮겨 현륭원(顯隆園)으로 조성하였다. 이 때 현륭원 옆에 갈양사를 중창하였는데, 명목상 조포사를 짓는 것이라고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 묘를 수호하기 위한 새로운 능침사를 창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불사를 위해 장흥 보림사의 사일(獅馹)이 팔도 도화주(八道都化主)가 되어 철학(哲學) 등과 함께 전국 관민에게 모금한 불사 비용이 87,505냥 1전에 달하였다. 이 시주금으로 사찰 건축 비용을 충당하고 절 유지와 제사 비용을 위한 사위전(寺位田)을 매입하였다.
용주사는 창건과 동시에 전국 5규정소(五糾正所)의 하나가 되어 승풍(僧風)을 규정하였으며 용주사 주지는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을 겸임하였다.
1900년에 용해(龍海)가 중수하였고, 1911년에는 30본산의 하나가 되어 수원, 안성, 남양, 죽산, 진위, 음죽, 용인, 고양, 시흥 등에 있는 49개 사찰을 관장하였다.
1931년에 강대련(姜大蓮)이 중수하였고, 1955년 사찰 정화 뒤에 조계종 제2교구 본사가 되었다. 같은 해에 관응(觀應)이 불교 전문 강원을 개설하였으며, 1965년 대웅보전을 중수하였다. 1966년 주지 희섭(喜燮)이 동국역경원(東國譯經院)의 역장(譯場)을 두었고, 1969년 전강(田岡)이 중앙선원(中央禪院)을 설립하여 1975년 지장전을 중수하고, 1977년 일주문을 세웠으며, 1981년 3층의 부모은중경탑을 세웠다. 1985년 불음각(佛音閣), 1986년 중앙선원 건물을 지었다. 1987년 대웅보전을 중수하고, 1988년 호성각을 지었다. 1993년 천불전을 짓고 만수리실을 개축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790년에 건립한 용주사 대웅보전이 1983년 경기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지장전(地藏殿), 시방칠등각(十方七燈閣), 범종각, 법고각(法鼓閣), 봉향각(奉香閣)과 1983년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천보루, 나유타료(那由他寮), 만수리실(曼殊利室), 삼문각(三門閣), 일주문, 수각(水閣), 동별당(東別堂) 등이 있다.
국가유산으로는 1964년 국보로 지정된 용주사 동종과 2012년 보물로 지정된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 대웅보전(大雄寶殿)이 있다. 또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금동향로, 청동향로, 용주사 상량문, 전적 수사본(典籍 手寫本), 용주사 병풍, 용주사 대웅전 후불탱화, 오층석탑, 대웅보전 목조 삼세불 좌상, 목조 감실, 지장전 목조 지장보살 좌상과 시왕상 일괄, 삼장보살도, 중종(中鐘), 남무대성인로왕보살번(南無大聖引路王菩薩幡), 전답양안 2건이 있다.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는 천보루(天保樓), 목조불패, 목조소대(木造疏臺), 청동시루가 지정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