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2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조가 생부(生父)인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세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을 화산으로 옮긴 후 1790년 갈양사 자리에 능사(陵寺)로서 용주사를 세우고 부모의 은혜를 기리는 뜻에서 제작된 『불설부모은중경(佛說父母恩重經)』경판이다. 『홍재전서(弘齋全書)』에 의하면 정조는 1796년(정조 20) 우연히 대보부모은중게(大報父母恩重偈)를 읽고 감동하여 그것을 단오와 제석에 인쇄하여 올리라고 지시하였는데, 용주사에 소장된 판본의 말미에 ‘병진년 중하개인 장우화산 용주사(丙辰年 仲夏開印 藏于花山 龍珠寺)’라고 적혀있어 이 판본은 1796년 단오에 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796년에 목판이 제작되었으며, 1802년에 이 목판을 기초로 하여 석판과 동판이 제작되었다. 현재 목판 42판, 동철판 7판, 석판 24판 등 모두 73판이 남아있다. 목판 42매는 각각 한문판 11매, 국역판 25매, 변상도 6매로 양면으로 양각되어 있으며, 석판 24매 역시 한문판, 한글판으로 나뉘고, 동철판은 변상도 7판이 단면에 양각되어 있다. 정조의 명으로 조성되어 주자소에 내입(內入)되었다가 화성 용주사에 보내진 기록이『주자소응행절목(鑄字所應行節目)』에 수록되어 있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은 부모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을 설하여 그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가르친 경전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에 많이 간행되었다. 조선 초기부터 삽화를 곁들인 판본이 많이 간행되었으며, 조선 중기 이후에는 언해본이 출판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용주사에 소장된 경판은 경문과 변상도의 새김이 매우 정교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는데, 당시 도화서(圖畫署) 화원이었던 단원 김홍도(金弘道)가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전해온다. 변상도는 모두 7종 14도로서 본문에 삽입되어 있지 않고 별개의 판으로 제작되었으며 본문의 내용 전개에 따라 차례로 실려 있는데, 여래정례도(如來頂禮圖 : 부처가 대중을 거느리고 남방으로 가다가 한 무더기의 삭은 뼈를 보고 엎드려 예를 올렸다는 내용)를 시작으로 십게찬송도(十偈讚頌圖 : 임신에서 양육까지의 은혜를 10폭으로 그린 것) 10폭, 주요수미도(周邀須彌圖 : 수미산을 백번 천번 돌더라도 부모의 깊은 은혜를 다 갚지 못한다는 내용), 아비타고도(阿鼻墮苦圖 : 자식이 불효하면 아비지옥에 떨어진다는 내용), 상계쾌락도(上界快樂圖 : 부모은중경을 바치면 부모가 하늘에서 쾌락을 맞게된다는 내용)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용주사 부모은중경판은 정조의 명의로 1796년에 새겨진 목판과 1802년에 목판을 바탕으로 하여 새겨진 석판 및 동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총73판이 남아있는데, 보존 상태가 온전하며 한문판과 한글판이 모두 남아있어 18세기 말의 국어사 자료로서 중요하다. 또한 김홍도가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 변상도 14매는 판각기술도 뛰어나고 정교하여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판화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