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 벽화는 전라남도 강진군 무위사 극락보전의 후불벽 앞면에 그려져 있는 조선 초기(1476년)의 아미타삼존벽화이다. 2009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해련 등이 그린 것으로, 흙벽에 채색되었으며 세로 270cm, 가로 210cm이다. 그림 가운데는 높은 수미대좌 위에 아미타불이 결가부좌하고 있다. 왼쪽에 관음보살이, 오른쪽에 지장보살이 정면을 향해 서 있다. 그 위로 좌우에 각각 나한이 3명씩 구름 속에 상반신을 드러내고 있다. 이 벽화는 고려불화의 특징을 계승하는 한편 조선 초기 불화의 특징들이 나타나 있다.
1476년(성종 7) 작. 흙벽에 채색. 세로 270cm. 가로 210cm. 전라남도 강진군 무위사 극락전. 2009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화면 중앙의 높은 수미대좌 위에 아미타불이 결가부좌하였고, 왼쪽(향우)에는 관음보살, 오른쪽(향좌)에는 지장보살이 정면을 향해 서 있으며, 그 위로는 좌우에 각각 3명씩 총 6구의 나한이 구름 속에 상반신만을 드러낸 채 서 있다. 화면 상단부 좌우에는 작은 규모의 화불이 2구씩 배치되었다.
세로 270㎝, 가로 210㎝의 벽면에 아미타삼존불을 비롯하여 6구의 나한 및 2구의 화불이 배치된 아미타삼존도 벽화로서, 중앙의 아미타삼존은 벽면 대부분을 차지하게끔 크게 그리고 나머지 권속들은 작게 묘사한 삼존불 중심의 구도를 취하였다. 아미타불은 커다란 광배를 배경으로 높은 대좌 위에 결과부좌하였다. 오른손은 가슴 앞으로 들어 올려 첫째와 셋째 손가락을 마주 잡고, 왼손은 무릎 위에 높고 첫째와 셋째 손가락을 마주 잡은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얼굴은 둥근 편이며 머리에는 크고 넓적한 육계가 묘사되었는데, 작은 이목구비와 높은 육계 등의 표현이 고려 아미타불화의 얼굴 표현과 유사하다. 이 벽화에 보이는 고려 불화적인 요소는 착의법에서도 볼 수 있는데, 안에 군의(裙衣)를 입고 붉은 바탕에 원문이 있는 대의를 입은 모습은 고려 아미타불화의 착의법과 유사하다. 그러나 대의의 원문이 간략해지고 승각기 없이 군의만 입은 모습에서 조선 초기 불화의 새로운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본존의 좌우로는 왼쪽에 지장보살, 오른쪽에 관음보살이 배치되었다. 원래 아미타불의 양 협시보살은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지만 고려시대에는 대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로 바뀌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 벽화에서도 그와 같은 전통을 따르고 있다. 관음보살은 아미타화불이 있는 높은 보관을 쓰고 두 손을 배 앞으로 모아 정병을 들고 정면을 향해 몸을 살짝 비틀었다. 어깨 위로는 검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고 있으며 머리 위에서부터 발끝까지 얇고 투명한 옷을 걸쳤다. 아미타불의 오른쪽에 서 있는 지장보살은 두건을 쓰고 오른손에는 석장, 왼손에는 보주를 들고 있다. 구름 속에 상체만 드러낸 6구의 나한은 합장하고 본존을 향해 또는 서로 마주 보면서 서 있는데, 둥근 얼굴에 개성이 뚜렷하다. 채색은 황색바탕에 붉은색과 녹색, 검은색 등을 주로 사용하였다.
한편, 이 벽화의 좌우 하단에는 ‘□□12년 병신년 3월에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와 관음보살, 지장보살을 그렸으며, 화원은 대선사(大禪師) 해련(海連)’이라는 내용의 화기가 적혀있다. 여기서 말하는 □□12년은 장흥 보림사 삼층석탑 북탑지(北塔誌) 내용 중 성화(成化) 14년(1478년) 무술(戊戌) 4월 17일에 무위사에 주불을 주조하고 대회(大會)를 열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성화 12년, 즉 1476년으로 추정된다.
이 벽화 앞에는 현재 1430년경 극락보전을 중수하면서 봉안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미타불, 관음보살, 지장보살 등 삼존불상이 있는데, 벽화의 삼존불과 유사하여 주목된다.
이 벽화는 1476년에 화원인 대선사 해련 등이 그린 것으로, 고려불화의 특징을 계승하는 한편 조선 초기 불화의 새로운 특징들이 잘 나타나 있다. 즉 넓고 큼직한 육계에 작은 이목구비가 특징적인 얼굴과 착의법, 법의의 원문 표현, 두건 쓴 모습의 지장보살, 관음보살의 투명한 겉옷과 치마 끝단의 구불구불한 옷주름, 온화한 색채 등 고려적인 요소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간단해진 문양과 키 모양의 광배, 본존불 가슴 부근까지 올라온 협시보살, 정상계주(부처의 머리 정상 부분에 장식하는 구슬. 보통 원형으로 표현) 등에서 조선 초기에 새로 나타난 요소가 잘 표현되어 있다.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벽화이자 고려 말∼조선 초기 불화 연구에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