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불국사 영산회상도 및 사천왕 벽화 ( )

회화
유물
문화재
경상북도 경주 불국사 대웅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의 영산회상도와 사천왕 벽화.
정의
경상북도 경주 불국사 대웅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의 영산회상도와 사천왕 벽화.
개설

201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영산회상도는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으며 크기는 세로 498㎝, 가로 447㎝이며 사천왕 벽화는 토벽에 채색하였고 크기는 향좌측은 세로 419㎝, 가로 188㎝, 향우측은 세로 419㎝, 174.5㎝이다. 1769년 6월에 영조의 딸인 화완옹주(和緩翁主, 1737~1808)의 보체(保體)와 상궁 김씨, 시녀(侍女) 정씨, 차씨, 김씨, 이씨 등의 보체를 기원하며 제작한 영산화상도 및 좌우 사천왕 벽화로, 독특한 구성을 갖고 있다. 영산회상도는 불국사 대웅전의 후불벽화로 봉안되었으며, 사천왕 벽화는 좌우 벽면에 각각 배치되어 있다.

내용

영산회상도는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에 여러 권속들이 본존 석가모니를 둥글게 에워싸고 있는 구도를 보여준다. 석가모니는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지니고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였다. 머리에는 뾰족하게 육계(肉髻)가 솟아있고 정상계주와 중간계주로 장식하였으며, 건장한 신체에는 우견편단(右肩偏袒)식으로 붉은 법의를 걸쳤다. 얼굴은 둥근 편으로, 가늘고 길게 뜬 눈과 활형의 눈섭, 작은 입술 등이 조화를 이루었으며, 두 귀는 길게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두광은 녹색으로 칠하였지만 신광 내부는 붉은색과 흰색의 활짝 핀 꽃으로 장식하여 화려함을 더한다.

본존의 좌우로는 모두 10명의 보살들이 본존의 광배를 따라 아래 위로 길게 늘어서 있다. 좌우협시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각각 여의(如意)와 연꽃을 들었으며, 나머지 보살들은 합장하거나 연꽃을 들고 시립하였다. 보살들 역시 본존과 마찬가지로 둥근 얼굴에 양감있는 신체표현이 돋보이는데, 일부 보살의 옷에는 화려한 금니의 봉황무늬가 그려져 있어 왕실관련 불화로서의 품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보살의 위로는 화면 가장자리에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이 합장하고 본존을 향하였으며, 석가모니의 좌우에 아난존자와 가섭존자, 화면상부에 8존자 등 10대 제자와 2구의 타방불이 배치되었다. 제자들은 다른 권속들에 비하여 얼굴에 음영표현이 강하게 드러나는데, 특히 가섭존자의 얼굴은 눈 주의를 비롯하여 이마와 코의 양쪽, 입 주변에 음영을 강하게 표현하여 입체감이 잘 드러나 있다. 채색은 홍색과 녹색을 주조색으로 흰색과 황색, 금니, 청색 등이 함께 사용되었으며, 전체적으로 명도가 높고 밝은 색감을 보여준다.

사천왕 벽화는 향좌측에 광목천·증장천도, 향우측에 지국천·다문천도가 배치되었다. 향좌측에는 서방 광목천왕과 남방 증장천왕을 중심으로 2위의 금강(金剛)과 용녀, 향우측에는 동방 지국천왕과 북방 다문천왕을 중심으로 2위의 금강과 용왕이 그려졌다. 전체적으로 백색과 녹색, 적색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청색과 금니 등도 함께 사용되었다. 털 하나하나까지도 세밀하게 그렸으며 음영법을 사용하여 입체감을 표현하였다.

영산회상도의 화기에 의하면 1769년 6월에 대시주인 화완옹주(和緩翁主)의 보체와 상궁 김씨 및 시녀 정씨, 차씨, 김씨, 이씨 등의 보체를 기원하며 대웅전 삼존불상을 개금할 때 새로 영산회상탱(靈山會都幀)을 조성하여 함께 봉안하였다고 한다. 영산회상도는 수화사 지첨(智瞻)을 비롯하여 차전(次全), 유선(幼禪), 철인(哲印), 부일(富一), 대연(大演), 유상(宥祥) 등이 함께 그렸다.

또 좌우 사천왕 벽화에는 조성연대가 적혀있지 않지만 향좌측 벽화(광목천·증장천도)에 ‘양공비구(良工比丘) 포관(抱冠)’, 향우측 벽화에 ‘양공 지첨 유성(良工智瞻有誠 ), 양공화원유성(良工畵員有誠 )’이라고 적혀있어 포관과 지첨, 유성이 함께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첨은 영산회상도의 수화사였으며, 포관과 유성은 도금양공(塗金良工) 목록에 이름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사천왕 벽화는 1769년에 영산회상도와 함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영산회상도를 구성할 때 불과 보살, 나한, 신중을 함께 표현하는 배치법과 달리, 불국사 대웅전 영산회상도에는 석가모니와 보살 및 나한을 한 폭에 배치하고 외호중인 사천왕은 그리지 않은 점에서도 후불화와 좌우 사천왕 벽화가 한 세트로 함께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징

영산회상도에 의례적으로 배치하는 호법신들을 그리지 않고 좌우 벽에 따로 그리는 형식을 취하였는데, 불보살과 호법신을 따로 배치하는 수법은 조선 후기 불화에서 종종 보이기는 하지만 여기에서와 같이 탱화와 벽화로 제작한 예는 볼 수 없다.

의의와 평가

18세기 중, 후반 통도사와 봉정사 등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화승들이 함께 제작한 영산회상도 및 사천왕 벽화로서, 화려하면서도 차분한 색감과 안정적인 구도 등 경상도 지역의 화풍을 잘 보여준다. 아울러 영산회상도를 구성함에 있어 탱화와 벽화가 한 세트를 이루는 구성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성을 나타내고 있어 조선 후기 불화 조성의 한 면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사찰벽화 :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Ⅰ』(문화재청·성보문화재연구원, 2010)
집필자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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