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삼베 바탕에 채색. 세로 176.6㎝, 가로 185.5㎝. 원광대학교박물관 소장. 건륭 15년인 1750년에 조성된 감로도로, 정사각형에 가까운 삼베에 그려져 있다. 화기에 의하면 덕인(德仁)과 유봉(有捧)이 1750년 8월 감로회(甘露會)로 제작 · 봉안하였다. 원래는 족자형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액자 형으로 장황되어 있으며, 보존 상태는 채색이나 바탕이 거의 박락되지 않아 매우 양호한 편이다.
그림의 구도는 크게 3단으로 나뉘어져 있다. 상단에는 6여래와 아미타삼존(아미타여래, 관음보살, 지장보살)이 중앙에 크게 그려져 있고, 향우측에는 석가모니와 아난존자, 가섭존자, 향좌측에는 번(幡)을 든 인로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여래와 보살들은 대부분 오색구름 위에 서서 향좌측을 향하여 배를 내밀고 서 있으나, 아미타여래와 석가여래, 6여래 중 가운데 여래는 정면을 향해 서있는 등 변화를 주었다. 이들 아래에는 나무가 우거지고 폭포가 흐르는 심산유곡이 녹색과 청색으로 구체적이고 비중 있게 그려져 있는데, 날카로운 침엽수림의 험준한 산세가 마치 천계(天界)와 인간계를 확연히 구분해주는 듯하다.
중단은 오곡과 백미, 꽃 등으로 정갈하게 꾸며진 시식대를 중심으로 한 쌍의 아귀(餓鬼)와 상복을 차려입은 상주들의 모습이 배치되었다. 시식대의 향좌측에는 재를 지내는 스님들이 바닥에 자리를 깔고 독송을 하거나 법고를 두드리며 바라춤을 추며 재를 지내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향우측에는 왕후장상(王侯將相)의 모습이 간단하게 표현되었다.
하단은 비교적 넓은 화면에 일상생활과 아귀도(餓鬼道), 지옥도(地獄道)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장면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있다. 화면의 최하단에는 쌍송(雙松)을 비롯한 산수를 배치하여 화면을 분리한 뒤 갖가지 일상생활에서 종종 벌어지는 고난을 간단하면서도 깔끔하게 그려냈다. 즉 싸움질하는 장면,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 춤을 추는 장면, 바둑을 두는 장면,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 장면, 호랑이에게 물려죽는 장면, 길 떠나는 장면 등 갖가지 정경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 옆에 똑같은 행동을 하는 인물을 옅은 먹을 사용해 몰골법(沒骨法)으로 간단하게 그려 넣은 점이다. 이것은 천도의 대상이 되는 망령(亡靈)이다. 감로도에서의 망령 표현은 일본 죠덴지(朝田寺) 소장 감로도(1591년)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서 이후 직지사 감로도(1724년), 쌍계사 감로도(1728년)에서 부분적으로 보이다가 운흥사 감로도(1730년)에 이르러 인물의 동작을 따라하고 있는 망령의 모습이 전면적으로 나타난다. 이 감로도의 망령 표현은 운흥사 감로도의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채색은 옅은 황색을 바탕색으로 하여 적색과 녹색, 하늘색, 검은색, 청색, 흰색 등을 사용하였는데, 색채가 밝고 화사하다. 또 화면 곳곳에는 청록산수가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 필선은 섬려하면서도 힘이 있는데, 안료의 농도를 옅게 하여 채색함으로써 힘있는 필선이 선명하게 잘 드러나 있다. 특히 하단의 쌍송을 비롯한 산수 표현은 상당히 사실적이고 일반회화 못지않은 기량을 보여주고 있어 화승의 뛰어난 솜씨를 짐작케 한다.
이 불화는 수화승(首畵僧) 덕인(德仁)과 유봉(有捀)이 제작하였다. 덕인은 수화승 법현(法玄)과 함께 청양 장곡사 석가모니후불도(1748년,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를 제작한 덕인(德印)과 같은 인물로 추정되며, 1769년에는 수화승 상정(尙淨)과 경주 불국사 대웅전 석가모니불도(1769년)를 제작하였다. 유봉은 18세기 후반 경상북도 지역에서 활동하며 대구 동화사 천룡도(1765년), 선산 수다사 시왕도(1771년), 김천 청암사 신중도(1781년) 등을 제작한 유봉(有奉)과 동일인으로 추정되지만 단정하기는 어렵다.
1750년에 덕인과 유봉이 그린 감로도이다. 6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삼존불과 석가삼존불이 표현된 형식, 휘날리는 번을 들고 있는 인로보살, 수많은 망령들의 묘사 등 18세기 전반기 감로도의 형식을 계승하는 한편, 여유있는 공간 표현과 안정감있는 구도, 차분한 화면 구성, 선명하고 밝은 색채, 섬세한 필치 등 18세기 중엽 감로도의 전형적인 도상을 갖추고 있는 수작이다. 1750년이라는 조성 연대와 제작 화승, 당시 이 그림이 ‘감로회(甘露會)’로 불리웠음을 알려주는 화기가 잘 남아있으며, 그림의 보관 상태도 매우 양호할 뿐 아니라 전체적인 구도와 양식적 측면에서도 18세기 중엽을 대표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