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 작.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66.8㎝, 가로 174.8㎝. 19세기 중엽 이후 감로왕도의 전형적인 도상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1868년 흥국사 감로왕도의 도상을 초본으로 하여 제작된 것이다.
화면의 크기는 흥국사본의 좌우 화면을 약간씩 잘라내어 가로 길이가 조금 짧을 뿐 도상은 거의 동일하다. 상단에는 동일한 모습으로 표현된 7여래가 합장을 한 채 나란히 서 있지만 흥국사본에 비하여 여래의 크기가 다소 축소되었다.
좌측에는 아미타삼존 일행이 구름을 타고 내영하는 모습과 왕후장상, 구름에 쌓여 북채를 휘두르는 뇌신(雷神)의 모습, 우측에는 지장삼존(지장보살·도명존자·무독귀왕)과 번(幡 : 설법할 때 절 안에 세우는 깃대)을 든 인로왕보살이 내영하는 모습이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묘사되었다.
7여래 아래로는 제단의 좌우에 높은 기둥을 세운 후 삼신불번(三神佛幡)을 늘어뜨리고 공양물을 배열하였다. 제단 아래 좌우의 커다란 청화 백자 안에는 모란이 가득 꽂혀 있어 화려하게 치장된 당시 제단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다.
제단의 우측에는 천막 안에서 스님들이 나란히 모여 앉아 독경을 하고 있다. 그 앞에서는 작법승(作法僧)들이 큰 북과 바라 등을 두드리고 승무를 추면서 의식을 집전하는 모습이 표현되었다. 제단과 조금 떨어진 곳에는 2구의 아귀(餓鬼)가 합장을 한 채 꿇어앉아 있다. 아귀의 좌우로는 세속의 다양한 장면들이 표현되었다.
하단의 장면은 산악과 수목으로 장면을 분리한 뒤 각 화면 속에 다양한 장면들을 묘사하였다. 즉 전쟁 장면을 비롯하여 지옥에서 죄인들이 형벌을 받는 장면, 남녀들이 춤을 추거나 서로 싸우는 장면, 무당의 굿 장면, 대장간에서 일하는 장면, 광대가 거꾸로 서는 묘기를 부리는 장면, 아귀가 밥그릇을 들고 아우성치는 장면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채색은 흥국사 감로왕도에 비하여 산악 등에서 수묵 기법을 많이 사용한 점이 눈에 띈다. 그리고 비교적 명도가 낮은 채색을 사용하여 화면이 차분한 느낌을 준다. 인물의 표현에 있어서는 음영을 주어 입체감을 표현하는 당시 경기 지역 불화의 맥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