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1년(숙종 7) 작.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83.5㎝, 가로 184.5㎝. 우학문화재단 소장. 199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그림은 죽은 자가 지옥에서 벗어나 극락왕생할 것을 빌기 위해 만들어진 감로탱화로서, 상단 · 중단 · 하단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조선 후기 감로도의 양식을 보여준다.
상단에는 청록으로 채색된 산수를 배경으로 하여 중앙에 일곱 여래[七如來]와 세 여래[三如來]가 각각 표현되어 있으며 그 좌우로 관음보살(觀音菩薩)과 지장보살(地藏菩薩) 및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 2구가 묘사되어 있다.
중앙에 묘사된 일곱 여래는 다보여래(多寶如來), 보승여래(寶勝如來), 묘색신여래(妙色身如來), 광박신여래(廣博身如來), 이포외여래(離怖畏如來), 감로왕여래(甘露王如來),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등으로, 고혼이 두려움을 벗어나 즐거움을 얻게 하고 감로미(甘露味)를 맛보게 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한다는 여래이다. 따라서 감로도에 이들 일곱 여래가 표현된 것은 고혼들이 일곱 여래의 원력으로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하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일곱 여래 옆에는 세 여래가 묘사되었는데, 가운데 여래는 정면을 향하고 오른손을 앞으로 쭉 내밀고 있어 마치 아미타내영도(阿彌陀來迎圖)의 모습처럼 표현되었으며, 좌우의 두 여래는 중앙의 여래를 향해 합장하고 있다. 이들 세 여래가 어떤 존상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중앙의 여래는 내영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미타여래로 추정된다.
여래의 향우측에는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이, 향좌측에는 번(幡)을 들고 여래를 향하여 몸을 비틀고 서 있는 인로왕보살 2구가 역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극락왕생하는 고혼들을 맞이하여 극락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처럼 인로왕보살을 2구로 그린 예는 매우 드문 것으로서 아마도 반대편의 관음지장보살도와 같이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상단의 불보살들은 모두 구름을 타고 있고 뒤에는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의 험준한 산악을 청록산수(靑綠山水: 청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여 그린 채색 산수화) 기법으로 묘사하여 하늘에서 내영하는 모습을 더욱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중단은 넓은 시식대(施食臺) 위에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고, 제단 오른쪽으로는 한 무리의 승려들이 법고(法鼓)와 바라, 요령 등을 들고 재단을 향해 서서 시식의례(施食儀禮)를 행하는 모습과 화염광배를 두르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아귀(餓鬼) 한 쌍이 묘사되었다. 이 장면은 곧 굶주림의 고통을 받는 아귀들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시아귀(施餓鬼)의 장면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제단의 위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오색번(五色幡)이 휘날리고 있어 의식을 행하는 현장의 모습을 더욱 실감나게 해주고 있다.
중단 주위로는 전쟁장면을 비롯하여 지옥의 모습, 서로 헐뜯고 싸우는 장면, 호랑이에 물려 죽는 장면 등 다양한 현실세계의 모습이 좌우 균형 있게 배치되어 있다.
이 작품은 산수를 배경으로 하여 상단과 중단, 하단의 장면이 전개되고 있는데, 인물중심의 감로도에 산수화적 요소를 가미하여 화면에 다양성을 주고 있다. 그리고 하단의 장면은 다른 감로도들에 비하여 많은 장면을 화면에 담아내면서도 전쟁장면, 싸움장면, 호랑이에 물려 죽는 장면 비롯한 중요 장면들을 구름으로 구획된 화면 내에 깔끔하게 배치하였다.
이와 함께 중앙의 여래를 향하여 몸을 비틀고 있는 인로왕보살의 자세라든가 불 · 보살이 타고 있는 구름의 모습, 시식대 위에서 펄럭이는 오색번 등으로 인하여 화면에 운동감이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적색과 녹색을 주조색으로 하면서 황토색, 옥색, 흰색 등을 함께 사용하여 밝은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은 보석사 감로도(1649년)와 더불어 17세기에 제작된 감로도로서, 16세기에 형성된 감로도의 양식을 계승하면서 이후 18세기에 다수 조성된 감로도의 선구적인 작품으로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