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사 목조 삼세불 좌상은 대표적인 조각승이 모여 제작한 불상들로, 1790년(정조 13) 대웅보전 건립 시에 계초(戒初)가 석가불을, 봉현(奉絃)이 아미타불을, 상식(尙植, 또는 상계)이 약사불을 제작하였다. 2009년 3월 10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경기도 화성시 용주로에 있는 용주사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목조 삼세불 좌상은 높이가 106.5㎝의 중형 불상으로, 석가불을 중심으로 아미타와 약사를 배치하였다. 불상은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각각 조각승이 달라 얼굴의 인상이나 신체 비례 등이 다르다.
석가불은 오른손을 촉지인(觸地印)하고, 왼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은 채 손바닥을 펴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수인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아미타불은 오른손의 손바닥을 밑으로 엄지와 중지를, 왼손은 반대로 손바닥을 위로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약사불은 오른손에 뚜껑이 덮인 작은 약합(藥盒)을 들고 있다.
불상은 상체를 앞으로 약간 내밀고 머리를 숙여 구부정하다. 머리의 나발(螺髮)은 촘촘하지만, 육계(肉髻)의 표현이 명확하지 않다. 머리 정상부에 원통형의 정상 계주(頂上髻珠)와 이마 위에 반원형의 중앙 계주(中央髻珠)는 불상마다 크기와 형태가 약간 다르다. 전체적인 얼굴 형태에서도 석가불과 약사불은 턱 부분을 둥글게 처리한 반면, 아미타불은 턱 부분을 수평으로 처리하여 각이 졌다. 삼세불은 모두 눈꼬리가 약간 위로 올라간 가느다란 눈, 원통형의 코, 살짝 미소 짓는 입을 표현하였다, 불상이 걸친 대의 자락은 오른쪽 어깨에 반달 모양으로 걸치고, 팔꿈치 뒤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있다. 오른쪽 어깨에 걸친 대의도 석가불의 경우 반전하는 옷깃이 자연스럽게 처리된 반면, 아미타불과 약사불은 U자형을 이루고 있다. 반대쪽 대의는 왼쪽 어깨를 완전히 덮고 내려와 복부에서 부채꼴로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펼쳐져 있다.
조각승 계초가 제작한 석가불은 1754년(영조 30)에 곡성 관음사 조성 목조 관음보살 좌상과 같이 복부 바로 밑에 가장자리 옷 주름이 완만한 S자를 이루고 있다. 이와 달리 아미타불은 펼쳐진 주름이 볼륨감이 있으며, 끝자락에 둥근 연봉우리가 밖으로 밀려나오듯이 표현하였고, 약사불은 복부에 짧은 U자형의 주름이 수직으로 내려와 밑에 펼쳐진 주름 가운데 놓여 있다. 대의 안쪽에 입은 승각기(僧脚崎)는 가슴까지 올려 끈으로 묶어 상단에 주름을 표현하였다.
석가불은 가운데 둥근 양감을 준 주름을 중심으로 좌우에 작은 주름 2개를 배치한 반면, 아미타불은 반원형의 주름을 중심으로 좌우 1개의 주름을, 약사불은 각진 오각형의 주름을 중심으로 좌우 2개 주름의 접힌 부분을 표현하였다. 목조 삼세불 좌상의 뒷면은 목 주위에 대의 끝단과 왼쪽 어깨에 앞에서 넘어온 대의 끝자락이 대좌 위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목조 삼세불 좌상이 앉아있는 대좌는 삼존이 동일한 형태로 석가여래는 앙련(仰蓮)과 복련(伏蓮)으로 이루진 이중 연화 대좌이고,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는 앙련(仰蓮)만 있는 연화 대좌로, 대좌 중간 전면은 용과 당초문 등을 화려하게 투각하였다.
대웅전 봉안 불상은 「각항택일(各項擇日)」에 따르면, 1790년(정조 14) 8월 16일에 시작하여 9월 26일에 점안하려고 계획되었다. 그러나 「원문(願文)」에 따르면, 불상 조성이 8월 16일에 시작하여 9월 30일에 완성된 후, 10월 초에 점안식(點眼式)을 거행한 것으로 적혀있다. 이러한 문헌을 근거로 불상이 한 달 보름 만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불상을 제작한 승려는 「제인방함(諸人芳啣)」에 석가여래는 전라도 정읍 내장사 통정(通政) 계초(戒初), 서방 아미타불은 전라도 지리산 파근사(波根寺) 통정 봉현(奉絃), 동방 약사여래는 강원도 간성 건봉사(乾鳳寺) 통정 상식(尙植)이며, 「원문(願文)」에서는 상식 대신에 상계(尙戒)가 적혀있다.
용주사는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사찰로, 목조 삼세불 좌상은 전라도와 강원도에서 활동한 조각승을 초청하여 제작한 불상이다. 따라서 용주사 삼세불 좌상은 18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조각승이 만든 기년명 불상으로, 조선 후기 불교 조각사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유물이다.
대웅보전에 봉안된 목조 삼세불 좌상은 1790년(정조 14)에 왕실에서 발원하여 조선 후기 불교 조각사에서 기준 작품이 될 수 있다. 이 불상을 만든 조각승들은 18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