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불상은 높이 71㎝, 무릎 폭 49㎝. 아미타여래에서 발견되었다는 조성발원문은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어 조성 사찰이나 조각승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으나 1643년(인조 21)에 제작되었다고 한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가 71㎝인 중형으로, 상체를 곧게 세우고 머리를 앞으로 살짝 내밀고 있다. 머리에는 뾰족한 나발(螺髮)과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肉髻)가 있고 중앙에 반원형의 중간계주(中間髻珠)와 정수리에 윗부분이 둥글고 낮은 원통형의 정상계주(頂上髻珠)가 있다. 각진 얼굴에 가늘게 뜬 눈은 눈꼬리가 약간 위로 올라갔고, 코는 콧날이 곧게 뻗었으며, 입에는 살짝 미소가 흐른다. 목에는 삼도(三道)를 희미하게 새겼다.
오른쪽 어깨에 걸친 대의(大衣)자락은 목에서 팔뚝 밑까지 완만하게 반원을 만들고, 팔꿈치와 복부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며, 대의자락 안쪽에 오른쪽 어깨를 덮은 편삼이 배에서 자연스럽게 접혀 있다. 하반신을 덮은 옷자락은 복부에서 한 가닥의 주름이 길게 반원형을 이루고, 좌우로 두 가닥의 주름을 펼쳤다. 대의 안쪽에 입은 승각기(僧脚崎)는 상단을 완만한 곡선으로 마무리하고 대각선으로 접었다. 불상 뒷면에는 목둘레에 대의 끝단을 두르고, 왼쪽 어깨에 앞에서 넘어온 대의 자락을 길게 늘어뜨렸다. 수인은 양손을 배 높이까지 올리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통인(通印)을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은 수인은 조선 후기에 제작된 석가불을 제외한 여래상과 보살상이 취하고 있다.
이 불상은 17세기 중반에 제작된 기년명 불상과 비교해 보면, 착의법이나 신체 비율 등이 1640년부터 1660년 사이에 제작된 불상과 유사하다. 특히 17세기 중반에 활동한 인균, 응원 등이 제작한 불상의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이나 어깨와 하반신에 늘어진 대의 자락의 처리 등이 유사하다. 따라서 인균이나 응원의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백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명확히 제작 시기를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서 기준 작품이 될 수 있다. 특히 불상의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이나 착의법 등에서 17세기 중반에 활동한 인균이나 응원의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이 만든 불상과 유사하여 불상 양식 변천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