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440㎝, 가로 350㎝. 1972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석가불 · 아미타불 · 약사불의 삼불회를 한 화면에 그린 그림으로서 화면을 크게 삼등분하여 중앙에 석가모니불, 오른쪽에 아미타불, 왼쪽에 약사불을 배치하고 주위에 보살과 사천왕 · 제자 · 분신불(分身佛) · 동자 등 권속을 빽빽하게 배열하였다.
석가모니불은 키형 광배(光背: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를 등지고 연꽃대좌 위에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왼손은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내리어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을 결하고 결가부좌(缺課趺坐)하였다.
무릎 아래로는 아난존자(阿難尊子)와 가섭(迦葉)이 시립하고 그 아래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연꽃을 들고 마주 보고 있다.
아미타불은 구품인을 결하고 연꽃대좌 위에 결가부좌하였으며, 아래에는 정병을 든 백의관음과 세지보살이 협시하였다. 약사불은 왼손을 무릎 위에 놓아 약기를 들고 있고 오른손은 가슴으로 올려 수인을 취하고 있다.
일광보살은 여의(如意)를 들고, 월광보살은 합장을 하고 서 있다. 화면의 가장자리에는 사천왕을 배치하고 아미타불과 약사불의 옆에는 각각 2명의 보살을 배치하였다. 이중 금강저(金剛杵 : 악마를 깨뜨리는 무기)를 든 보살은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로 생각되지만 나머지 보살의 명칭은 알 수 없다.
이 불화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마치 초상화를 그리듯 사실적으로 그린 입체적인 인물 표현과 명암법을 이용한 채색법이다. 이러한 기법은 19세기 후반 경기도 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성행하였던 양식적 특징이다.
이 불화에 보이는 원근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짜임새 있는 구도, 사실적인 인체 묘사 등은 1878년 청룡사 삼불회도를 비롯하여 1892년 봉은사 삼불회도, 1907년 양화사 삼불회도 등 19세기 말∼20세기 초 불화들과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1913년 용주사 신중도, 1916년 전등사 신중도, 1916년 정수사 신중도 등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그동안 1790년에 김홍도가 제작하였다고 알려져 왔으나 이상과 같은 양식적 특징에 의해 볼 때 1910년대 용주사가 대대적으로 중창되었을 당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