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 ()

미륵하생경변상도
미륵하생경변상도
회화
개념
불교의 종교적인 이념을 표현한 그림.
정의
불교의 종교적인 이념을 표현한 그림.
개설

‘불교 회화(佛敎繪畫)’를 줄여서 부르는 용어로,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의 두 가지 개념이 있다. 좁은 의미로는 존상화(尊像畫), 즉 절의 법당 같은 곳에 모셔 놓고 예배하기 위한 그림을 일컫는다. 넓은 의미로는 불교도나 이교도를 교화하기 위한 가지가지 그림이나 절을 장엄하게 하기 위한 단청(丹靑) 등 불교적인 목적을 지닌 일체의 그림을 일컫는다.

불화의 기원

불화가 언제 발생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불교 조각과 마찬가지로 불교의 성립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초기의 작품으로 현재 남아 있는 예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초기의 불교 사원에 불화들이 그려졌던 사실은 여러 경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 根本說一切有部毘那耶雜事』 같은 경전에서는 최초의 사원인 기원정사(祇園精舍)에 사원의 건물이나 용도에 따라 불화를 장식하였다고 하는 기록이 보인다. 주로 약차(藥叉)·본생담(本生談)·불전도(佛傳圖)·해골 등의 교훈적이고 장엄한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예배 대상인 존상화들은 아직 그리지 않았다.

물론 이 경전의 말대로 부처 당시부터 기원정사 같은 사원에 불화들이 그려졌다고 꼭 믿을 수는 없다. 하지만 초기 사원에는 어떠한 형태이든지 장식적이거나 교훈적인 그림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적어도 서기전 3∼2세기경부터는 인도의 불교 사원에 불화가 그려졌다고 믿어진다.

그런데 대승경전인 『현우경 賢愚經』이나 『현겁경 賢劫經』 같은 데에서는 화사(畫師)들이 부처의 형상을 그려 예배하고 공경하였다고 하는 존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화엄경 華嚴經』이나 『아비담경 阿毘曇經』 같은 데에도 “마음은 창작하는 화사와 같이……”라든가 “화사가 그림을 그리는……” 등의 비유가 나오는 것처럼, 화사들의 불화 작업을 수행의 비유로 들 만큼 불화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불화는 인도 아잔타석굴(Ajanta石窟)의 벽화들이다. 물론 이 불화들은 서기전 2세기경의 작품들이어서 부처 당시 또는 초기 불교의 불화들은 알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서기전 3,2세기경의 탑 조각이나 경전에 보이는 초기 불화의 주제는 불전도나 본생도 같은 교화적인 불화들임이 분명할 것이다.

불화의 종류

재료에 의한 구분

재료는 다시 그 바탕[性質]과 기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재료의 바탕은 흙·나무·베[布]·종이·금속·돌 등으로 다양하다. 이러한 재료의 성질은 불화의 기능은 물론 교리적인 면에까지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보존이나 유행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가령 흙이나 돌·나무 같은 것은 대개 벽면이나 지붕을 구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천정화나 벽화 등이 그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종이나 베 같은 재료로는 탱화(幀畫)나 경화(經畫) 등을 그리게 된다.

벽화는 흙벽 그림·돌벽 그림[石壁畫]·판벽 그림[板壁畫]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흙 벽화는 사원 건물의 파괴나 보수 때에 없어지기 쉬워서 조선 전기 이전의 작품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돌벽 그림은 석굴 사원이나 목조 건물의 벽에 경을 새길 경우 등의 특수한 예에 속하는 것이다. 인도나 중국 같은 데서는 예로부터 많은 석굴 사원이 조성되어 그 예가 흔하지만 우리 나라는 아직까지 그 예가 없다.

판벽 그림은 누각이나 건물의 바깥벽을 보호하기 위해서 나무를 붙이고 불화를 그린 것이다. 사원의 나무 기둥이나 문 등에 그린 그림도 이 범주에 속한다. 천정화는 목조 사원의 천장을 보호하기 위하여 기름의 종류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한 채색 같은 것을 덧입히는 것이다.

사원 내에서도 특히 법당은 불상을 봉안하는 성소(聖所)이기 때문에 화려한 장엄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천장도 여러 도안으로 채색하게 되는데, 이것을 우리는 흔히 단청이라 부른다. 단청은 원래 색채로 그린 모든 그림을 통틀어서 불렀던 말이었다. 하지만 좁은 뜻으로는 천장이나 기둥 같은 곳에 도안적인 무늬나 비천(飛天)·용·보살·불상 등을 채색으로 그린 그림을 말한다.

벽화나 천정화가 일정하게 고정되어 이동할 수 없는 그림이라면 탱화·경화·병풍화 등은 움직일 수 있어서 그때 그 때의 의식에 맞추어 장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탱화는 벽면 같은 곳에 거는 그림으로 흔히 족자형(簇子形) 또는 액자형의 불화이다. 고려시대 이후, 특히 조선 후기에 애용되던 형식의 그림으로 현재도 가장 많이 남아 있다.

경화는 불경에 그린 그림으로 흔히 변상(變相)·변상도라 한다. 불경에 직접 그린 것과 나무나 금속판으로 인쇄한 판화 형태의 것이 있다. 병풍화는 불화를 병풍 형태로 만든 것으로,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형식이다. 탱화·경화·병풍화의 재료는 모두 베 또는 종이였으며, 베의 바탕으로는 비단·삼베·모시가 많이 사용되었다.

용도에 의한 구분

불화의 용도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사원을 장식하는 장엄용(莊嚴用), 둘째 일반 대중에게 불교의 교리를 쉽게 전달해 주기 위한 교화용(敎化用), 셋째 의식 같은 때에 예배하기 위한 예배용(禮拜用)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 가지의 용도는 엄격히 분리되어 쓰이기보다는 그 용도를 서로 겸하고 있다.

가령 후불탱화(後佛幀畫)나 후불벽화 같은 것은 예배용 불화의 성격도 갖고 있다. 하지만 교화용 또는 본존상을 장엄하게 해 주기 위한 뜻도 포함하고 있다. 장엄용 불화의 대표적인 예는 천장이나 기둥·벽면에 그린 단청과 벽화를 들 수 있다. 단청은 도안적인 무늬 그림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상(像)이나 서조(瑞鳥)·서수(瑞獸) 등을 그리는 경우도 많다.

교화용의 불화로는 일찍부터 사원의 벽화로 불전도나 본생도 같은 설화적인 그림이 많이 그려졌다. 팔상도(八相圖)를 위주로 하여 지옥변(地獄變)·아미타내영도(阿彌陀來迎圖)·미륵내영도(彌勒來迎圖)·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 이밖에 본존불의 후불탱이나 후불벽화도 이 범주에 속한다. 특히 경변상도(經變相圖)들은 교화용 불화의 으뜸으로 꼽힌다.

예배용 불화 역시 단순히 예배용 본존으로만 사용한 경우는 드물고 본존불상을 보조하는 장엄적·교화적 구실도 겸하고 있다. 다만 법당 안에서 할 수 없는 법회의 경우 야외에서 거행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때에는 불화를 본존으로 사용하는 것이 상례이다. 이와 같이 야외 법회 때 사용하는 불화를 괘불(掛佛) 또는 괘불화라고 하여, 법당 앞뜰에 있는 괘불대에 걸어 놓고 예배용으로 사용하였다.

불화의 주제

불화는 그려진 주제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즉, 불화·보살화·나한조사도(羅漢祖師圖)·신중화(神衆畫)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것을 다시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영산회상도

『법화경 法華經』의 변상(變相)을 압축, 묘사한 것이다. 대웅전의 석가후불화로 봉안되거나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를 봉안하기 위하여 특별히 지은 영산전의 후불화로 모셔진다. 따라서 석가후불화와 영산회상도는 따로 구분할 수 없다. 다만 영산회상도가 석가후불화보다 좀더 그 내용이 풍부하고 설명적으로 묘사한 경우가 보통이다.

대웅전 후불화의 구도는 삼존불화 형식(三尊佛畫形式 : 중앙에 석가불, 왼쪽에 약사불, 오른쪽에 아미타불을 봉안한 형식)과 단독 그림 형식[獨尊佛形式]이 있다. 송광사의 영산회상도 같은 것은 자세한 묘사의 대표적인 예이고, 통도사의 영산회상도의 경우는 석가후불탱과 같다.

팔상도

부처의 전기를 회화로 표현한 것으로 부파불교(部派佛敎)시대부터 유행하였다. 초기에는 보통 부처의 생애를 네 장면으로 압축, 묘사하였다. 그러나 대승 불교에서는 여덟 장면으로 묘사하여 팔상도(八相圖)라 하였다.

여덟 가지의 극적인 장면은 ①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상[兜率來儀相], ② 룸비니 동산에서 내려오는 상[毘藍降生相], ③ 4문에 나가 관찰하는 상[四門遊觀相], ④ 성을 넘어 출가하는 상[踰城出家相], ⑤ 설산에서 수도하는 상[雪山修道相], ⑥ 보리수 아래에서 마구니에게 항복받는 상[樹下降魔相], ⑦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포교하는 상[鹿園轉法輪相], ⑧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하는 상[雙林涅槃相] 등이다. 쌍계사·운흥사·개심사 등의 팔상도가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비로자나불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모신 대적광전(大寂光殿)이나 비로전·문수전·화엄전 같은 곳에 모셔진다. 이 불화 역시 석가불화 못지 않게 조성되었고, 그만큼 많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대적광전에 비로자나불을 중앙 본존으로, 노사나불과 석가여래를 좌우협시불로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 같다. 따라서 이 전각에는 삼신불(三身佛)의 장면을 더 설명한 삼신후불화들이 봉안된다.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상단과 하단으로 5∼7인씩의 보살성중(菩薩聲衆)과 성문(聲聞)들을 배치한 것이 비로자나후불화[法身佛畫]이다. 통도사의 비로자나불화가 대표적인 예이다. 노사나후불화[報身佛畫]는 비로자나후불화의 왼쪽에, 석가후불화[化身佛畫]는 오른쪽에 봉안하며, 두 그림의 구도는 같다.

노사나불은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설법인(說法印)을 짓고 보관(寶冠)을 쓴 모습이 특징적이다. 그리고 앞면 좌우에 지국천왕(持國天王)·증장천왕(增長天王)이 배치된다. 석가후불화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짓고 앞면 좌우에 광목천왕(廣目天王)·다문천왕(多聞天王)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석가불 주위에는 보살 무리를 묘사하였다.

아미타불화

극락전의 아미타불상 뒤에 모시는 불화이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서방 정토에서 무량한 설법을 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이 불화는 우리 나라의 경우 몇 가지의 형식으로 그려지고 있다.

① 아미타불이 단독으로 그려지는 경우(예 : 大德十年阿彌陀如來圖), ② 삼존불 형식으로 그려지는 경우(예 : 無爲寺極樂殿後佛壁畫 등), ③ 아미타불과 4대보살 또는 8대보살을 그리는 5존도와 9존도 형식(예 : 延祐七年銘 阿彌陀九尊圖), ④ 아미타불과 보살들, 아라한·사천왕 등이 묘사되는 복잡한 형식(예 : 桐華寺極樂殿阿彌陀後佛幀·長谷寺阿彌陀後佛幀 등), ⑤ 서방 극락 장면을 묘사한 그림(예 : 桐華寺念佛庵 阿彌陀後佛畫·開心寺 阿彌陀後佛畫 등) 형식 등이다.

아미타내영도는 아미타불이 염불을 잘 행한 사람을 마중 와서 서방 극락으로 인도해 간다는 염불왕생(念佛往生)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그림이다. 이 아미타내영도도 몇 가지 형식으로 그려지고 있다.

① 아미타불 단독으로 염불수행자를 맞이해 가는 것, ② 아미타·관음·세지의 삼존불 내영장면, ③ 아미타불과 25보살 내영장면, ④ 아미타불과 성중(聖衆)이 맞이해 가는 것(예 : 무위사극락전 아미타내영도벽화), ⑤ 왕생하는 자들을 배[龍船]에 태워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과 관음보살이 아미타불에게 인도해 주는 장면(예 : 銀海寺念佛往生捷徑之圖) 등이다.

약사여래불화

질병과 재난을 없애 준다는 약사 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불화로 조성할 경우 역시 몇 가지 형식으로 그려진다. ① 약사여래 단독상만 그려지는 경우, ② 약사여래·일광보살·월광보살을 그리는 삼존 형식(예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약사여래삼존도), ③ 삼존상 이외에 12신장(十二神將)과 기타 성중을 거느린 경우, ④ 동방유리광세계(東方瑠璃光世界)인 동방 정토를 그리는 경우 등이다.

그런데 조선조 후기부터는 석가삼존후불탱의 왼쪽에 약사여래(藥師如來)를 표현한 형식도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쌍계사 대웅전을 비롯한 운흥사 대웅전, 광덕사 대웅전, 화엄사 각황전 등의 왼쪽 후불탱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불화

보광불(普光佛)에서부터 상만왕불(常滿王佛)까지의 53불(五十三佛)을 그리는 것이다. 한 장 또는 여러 장에 나누어 그리는 경우가 있다. 송광사 불조전(佛祖殿)에 봉안된 53불화는 9불탱 2폭, 13불탱 2폭, 5불탱 2폭 등으로 모두 6폭에 나누어 그려졌다.

천불화

과거 천불·현재 천불·미래 천불을 각기 그리는 경우, 3천불 모두 그리는 경우, 현재 천불(千佛)만 그리는 경우 등이 있다. 대개는 현재 천불만 그리는 경우가 많다. 고창 선운사 천불탱(동국대학교 소장)의 경우 1폭에 250불씩 4폭에 나누어 그렸다. 천안 광덕사의 경우에는 1폭에 천불씩 모두 3폭에 3천불을 그리고 있다.

관음보살화

원통전(圓通殿)의 후불화 또는 극락전에 모셔진 불화로 관음 신앙의 성행에 따라 많이 조성되었다. 시대에 따라 그 모습도 다양하여 다음과 같은 여러 종류의 불화가 조성되었다.

① 보관에 아미타불을 화불로 봉안하고 있는 일반적인 관음보살화(觀音菩薩畫, 우리 나라 관음불화 중 가장 많다), ② 백의관음(白衣觀音)·양류관음(楊柳觀音)으로 힌두교 상에서 유래되었다. 무위사 극락전의 백의관음화는 버들가지까지 손에 들고 있는 모습으로 백의·양류관음상을 함께 표현하였다. 해인사의 양류관음화도 대표적인 작품이다.

③ 11면의 표정에서 나타나듯이 다양한 성격을 갖고 중생을 적절히 제도한다는 11면관음화는 일찍부터 우리 나라에서 인기가 있었다. ④ 성관음(聖觀音 : 33身觀音), ⑤ 불공견색관음(不空羂索觀音)도 일찍부터 제작, 신앙되었다.

⑥ 가장 힘 있는 구제자를 상징하는 천수관음(千手觀音)은 『삼국유사』에서 보이는 분황사 천수천안관음보살도(千手千眼觀音菩薩圖)를 비롯하여, 고려시대에도 많이 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시대에는 가끔 단독으로 묘사된다. 이밖에도 마두관음(馬頭觀音)·준지관음(準胝觀音)·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이 있으나 크게 유행하지 않았고 작품도 볼 수 없다.

나한도

부처의 16제자를 그린 그림으로 응진전(應眞殿 : 羅漢殿)에 봉안된다. 나한도의 배치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 6인씩으로 한다. 탱화로 제작할 경우에는 폭의 수에 따라 다르다. 파계사의 나한도(羅漢圖)는 1폭에 4인씩 배치한 예이다.

조사도

고승들의 초상화를 일컫는 것으로서 영정(影幀) 또는 진영(眞影)이라고도 부른다.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시대부터 이런 종류의 조사도(祖師圖)가 성행하였다. 특히 고려시대에 유행되었던 것 같다. 조사당에는 흔히 수십 점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는데, 송광사 국사전과 통도사 조사당(120여 점 소장) 같은 예가 대표적이다.

제석·신중화

불법의 외호중(外護衆)으로 모든 불화에 항상 등장하는 신들이다. 원래는 인도의 토속신이었는데 불교신으로 수용되면서, 대승 불교에서는 항상 이들을 호법신으로 등장시켜 도상으로 표현하였다.

제석·신중화(帝釋·神衆畫)에는 ① 제석천을 위주로 한 제석 그림, ② 제석과 천룡(天龍)을 위주로 한 제석·천룡 그림, ③ 제석과 금강역사(金剛力士)를 그린 그림 등이 있다. 사찰로 들어가는 중문에는 대개 이 절의 수문장격인 신장(神將)을 봉안하였다. 우리 나라에는 보통 천왕문과 금강문이 많다. 천왕문에는 사천왕상을 안치하거나 통도사에서와 같이 사천왕 그림을 그려 봉안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불상 뒤에 사천왕 그림을 배치하는 경우도 있다.

지옥계 불화

지옥계(地獄系)의 불화로는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시왕도(十王圖)·삼장보살도(三藏菩薩圖)·감로왕도(甘露王圖) 등이 있다. 지옥계불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옥의 중생을 구제해 주는 지장보살 그림이다. 이 그림도 역시 몇 가지 형식을 보인다.

① 단독의 지장화로 특히 고려·조선 초기에 많았으며 입상과 좌상이 있으나 대부분 입상이다. ② 아미타여래의 협시보살로 그려진 경우, ③ 지장삼존도 형식으로 지장보살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거느린 것, ④ 지장과 그의 권속 일행을 그린 경우, ⑤ 지장과 그의 권속 외에 시왕(十王)까지 그린 형태 등이 있다.

시왕도는 지옥의 심판관인 10인의 대왕을 그린 그림이다. 보통 명부전(冥府殿)의 중앙에는 지장보살상과 그림이 있고 그 좌우로 5폭씩 시왕도를 배치한다. 대왕 중에 전륜대왕(轉輪大王)만 투구와 갑옷을 입은 무장의 모습일 뿐이다. 그 밖의 왕들은 모두 관을 쓰고 붓과 홀을 잡고 책상 앞에 앉아 있다. 화면의 아랫부분에는 왕에 따라 죽은 자를 재판하는 지옥의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삼장보살도는 지장보살도가 확대, 발전되어 나타난 그림이다. 즉 석가여래가 1신에서 3신으로 사상이 발전된 것과 같이 지장보살 신앙이 더욱 심화, 확대되어 나타난 것이다. 삼장 그림은 보통 한 폭에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삼장과 협시존자만 그리는 경우와 협시와 모든 권속까지 그리는 경우가 있다. 통도사·천은사·동화사 등의 삼장보살도가 대표적인 예이다.

감로왕도는 아귀(餓鬼)의 세계를 묘사한 그림으로 우란분경변상도(盂蘭盆經變相圖)라고도 한다. 음력 7월 15일(백중날) 돌아가신 부모를 위하여 부처님과 스님께 음식을 공양하면 아귀도에 빠진 부모님을 구할 수 있다는 우란분재 의식이 성함에 따라 많은 변상도들이 그려졌다. 현재도 수많은 작품이 남아 있다.

그림의 형식은 두 가지로 성반 의식(盛飯儀式)을 그린 것과 성반 의식은 생략하고 불·보살·스님·아귀나 귀왕·인로왕보살 등이 표현된 형식이 있다. 이밖에 여러 지옥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 것도 있다. 봉정사의 감로왕도는 이들 그림 중 지옥의 모습을 가장 복잡하고 처참하게 표현하고 있다.

칠성탱화

칠성(북두칠성)은 별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별로, 그의 특이한 별자리는 방향을 가리켜주는 길잡이로 각광을 받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점차 이 별을 신앙하고 소원을 빌게 되었다. 이러한 민간 전래의 칠성 신앙을 불교에서는 일찍부터 흡수하여, 칠성(七星)은 신에서 불(佛)로 승격하게 되었다. 그래서 별마다 ‘○○여래불’이라는 이름을 붙여 칠성각에서 예배하게 되었다.

칠성각의 중앙에는 칠성을 대표하는 치성광삼존(熾盛光三尊) 그림이 있고, 그 좌우로 칠성그림을 배치한다. 형식은 1폭에 모두 표현하는 경우와 본존 1폭, 좌우 1폭씩 3폭으로 하는 경우 그리고 본존 1폭, 좌우 각 칠성 1폭씩 및 성군(星群) 2폭 등 10폭 또는 11폭으로 하는 경우 등 다양하다.

산신도

호랑이에 대한 신앙도 칠성 신앙처럼 일찍부터 민간인들에게서 산신령으로 존중되어 오던 것을 불교에서 수용한 것이다. 따라서 절에서는 산신각을 지어 산신도(山神圖)를 그려 봉안하고 신앙하게 되었다.

이런 신앙은 중국에서도 수나라 때부터 시작하여 당나라에서 유행을 보았던 것 같다. 산신 그림은 호랑이의 변신인 신선을 큼직하게 그리고, 진짜 호랑이는 신선 앞에 정답게 그려 놓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산신도는 없는 절이 없을 정도로 작품도 많이 남아 있다.

불화 양식의 변천

우리나라에서 불화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불교 수용과 함께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당시의 작품은 한 점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내용과 양식을 분명히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고구려의 벽화 고분에 그려진 벽화로 미루어 보아 당시의 불교 회화의 흐름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더구나 이러한 벽화에는 불교적인 내용도 더러 있다. 그래서 이들과 중국 둔황 벽화 등과 비교해서 살펴보면 당대의 불교 회화는 어느 정도 복원이 가능할 것이다

백제나 신라의 불화 역시 한 점도 유례가 없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고구려의 불화와 비슷한 양상이었을 것이다. 통일신라 때는 긴장되고 세련된 사실적 양식의 불화들이 성황을 이루었겠지만 현재는 역시 본격적 작품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화엄경사경변상도(華嚴經寫經變相圖)가 1점 전하고 있다. 이 불화는 8세기 중엽경의 불상들과 비슷한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당시의 당나라의 양식과도 유사한 양식을 보여 준다.

고려시대 불화는 대개 4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은 거의 대부분 고려 후기 작품뿐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볼 수밖에 없다. 고려 후기의 불화는 수십 점이 국내외에 전하고 있다. 고려 후기의 권문세족이 대표하는 귀족적 분위기가 불화에 잘 드러나 있다. 화려하고 고귀한 금선과 밝고 찬란한 채색을 주로 해서 그린 이들 불화는 고귀하고 찬란한 아름다움을 유감 없이 구사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불화는 크게 네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기는 15세기 중엽까지이고, 2기는 17세기 초까지, 3기는 18세기 중엽까지, 4기는 1900년경까지이다. 1기의 불화는 고려 후기 불화 양식을 계승하여 고려적인 귀족적 분위기가 짙게 남아 있다.

2기의 불화는 이제 조선적인 불화 양식이 완전히 정립된 것이다. 군도적(群圖的)인 구도와 함께 평면적인 형태, 홍녹색이 주조를 이루는 차분한 채색 등으로 조선적인 불화 특징이 정착 단계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3기의 불화는 2기불화가 보다 완성된 것으로 다종다양한 불화들이 제작되어 수많은 작품이 남아 있다.

4기의 불화는 청색을 남용하면서 전반적으로 탁해진 채색과 딱딱한 형태 등 고귀하고 성스러운 아름다움이 크게 감퇴되었다. 그러나 3기와 함께 4기 불화들은 현재 수만 점이 남아 있어서 우리 나라 문화의 보고를 장식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미』 16-조선불화-(문명대 감수, 중앙일보사, 1984)
『한국의 미 7』-고려불화-(이동주 감수, 중앙일보사, 1981)
『한국의 불화』(문명대, 열화당, 1981)
『한국불화의 연구』(홍윤식, 원광대학교출판국,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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