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177㎝.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금동불상으로 대좌(臺座)나 광배(光背)는 없어지고 불신(佛身)만 남아 있다.
머리는 큰 편이며 높은 육계(肉髻)나 나발(螺髮)의 머리카락은 기교 있게 만들었다. 얼굴은 길면서 근육이 부풀어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1962년 지정)처럼 보이고 눈두덩과 두 뺨, 군살 진 아래턱 등이 두드러지게 표현되어 있다.
눈썹은 길게 반원으로 그려져 있고 이마와 눈두덩을 구별짓는 경계선같이 음각선이 한 줄 조각되었는데, 이러한 특징은 8세기부터 나타나지만 9세기에 크게 유행하였던 것이다. 팽창된 눈두덩에 두 눈을 가늘면서도 길게 새겼는데 아래로 내려다보는 듯 반쯤 떠 있다. 코는 이마와 같은 높이로 연장되어 콧잔등의 반 정도가 평판적으로 표현되었고 이 코에 잇달아 인중을 뚜렷이 두드러지게 새겨 입까지 코의 연장처럼 묘사되었다. 이처럼 이상적이면서 세련된 불안(佛顔)에서 진전되어, 느슨해진 이 불상의 경향은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과 상통한다.
당당하면서 장대한 편으로 떡 벌어진 어깨, 양감 있는 젖가슴, 잘쏙한 허리, 볼록한 아랫배, 얕으면서도 유난히 넓게 앉은 자세 등에서 이 불상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형태는 흔히 8세기 중엽경의 불상과 비교되며 9세기 후반기 불상들과도 친연성이 강하지만, 그보다는 한결 이상적이면서 세련된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이 아래, 왼손이 위로 올라간 지권인(智拳印)으로서 일반적인 비로자나불의 지권인과는 반대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의(大衣)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서 얇게 밀착되어 몸의 굴곡이 여실하게 드러나 보인다. 왼팔에서 내려진 옷자락은 지그재그형을 이루었는데, 이것은 가슴의 옷주름과 함께 축 늘어지고 해이해진 표현이다. 다리의 옷주름도 무릎 부분의 아래에서 위로 세 가닥씩 올라가고 다리를 따라 빗긴 선이 서너 가닥씩 주름져 있고, 두 다리 사이의 앞섶도 지그재그형을 이룬다. 이외에 배 부근의 U자형 옷주름에도 끊어지는 수법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에도 나타난다.
이 불상은 극락전에 봉안된 금동아미타여래좌상과 함께 『불국사사적기(佛國寺史蹟記)』 가운데 최치원(崔致遠)이 찬한 「비로자나문수보현상찬(毘盧舍那文殊普賢像讚)」의 내용처럼 진성여왕이 화엄사상(華嚴思想)에 의하여 조성한 불상으로 생각되어, 그 역사적 의의는 자못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