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사 병풍」의 제1첩에는 청록산수 기법으로 묘사된 바위 곁에 매화, 동백, 대나무 등이 어우러진 모습이 그려져 있다. 매화와 동백은 이 장면이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제2첩에는 해당화, 키 작은 패랭이꽃, 이름 모를 꽃들이 푸른색 괴석 주변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른 장면과는 달리 괴석의 푸른색은 화면에 생동감을 준다. 괴석에는 명암이 뚜렷이 가해져 있는데, 이는 병풍의 제작 시기를 비정하는 데에 중요한 관건이 된다. 제3첩에는 왼편에 키 큰 오동나무 두 그루가 치우쳐 배치되고 사선으로 길게 뻗은 가지 아래에는 모란이 배치되어 있다. 상단에는 서운(瑞雲)을 배치하여 상서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는데 서운은 꽃과 나무를 주제로 한 그림에서 보기 어려운 요소이다. 제4첩에는 화면 우측의 바위를 중심으로 국화꽃이 자라고 있으며 윗부분에는 붉은색이 감도는 단풍나무가 그려져 있어서 가을이라는 계절감을 느낄 수 있다. 전체적으로 바탕의 박락이 심하게 진행되고 채색이 희미해져서 그림의 내용이나 화풍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든 어려움이 있다.
「용주사 병풍」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바위와 나뭇가지에 가해진 태점(苔點)이다. 초록색 동그라미 가장자리에 먹선을 두르고 그 윤곽선을 따라 작은 흰 점을 찍은 형태의 태점은 상당히 장식적인 효과를 준다. 이 같은 장식적인 태점 외에도 먹점 중앙에 초록색 점을 찍은 단순한 태점도 나뭇가지 주변에 흩뿌려져 있다. 장식적인 태점은 19세기 후반의 궁중 채색화에서 나타나는 양식이다. 이 병풍의 또 다른 특징은 일반 회화로서는 드물게 화면의 세로 높이가 188㎝에 달한다는 점이다. 병풍의 큰 규모로 볼 때 애초에 천장이 높은 사찰이나 공공 건물에서 사용하기 위해 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전통적인 병풍의 제작 관행을 고려하여 「용주사 병풍」이 원래 8첩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19세기 후반에는 궁중을 중심으로 특별한 용도의 4첩 병풍도 제작되었고 병풍의 크기가 대형인 점을 감안하면 원래 4첩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이 병풍은 단원 김홍도(金弘道, 1745~1806년경)의 그림으로 정조가 용주사 창건 당시에 하사하였다고 구전(口傳)되지만 김홍도의 화풍과 부합하지 않으며 오히려 명암법의 사용과 장식적인 태점의 모양이 19세기의 화풍에 매우 가깝다. 따라서 이 그림을 김홍도와 연결하여 논의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