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56.2㎝, 가로 65㎝.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봉수당진찬도」는 원래 『화성능행도(華城陵幸圖)』 8폭 병풍의 첫 번째 폭에 해당되는 그림이다. 현재 소장처에는 나머지 7폭을 제외한 이 한 폭만이 독립된 화축으로 전하고 있다.
『화성능행도병』은 능행을 주관했던 정리소(整理所)에서 이를 기념하여 만든 병풍이다. 원행의 전모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의하면 당시 대병이 총 16좌나 만들어졌다. 즉 궁중에 대병 3좌를 내입하고, 총리대신 채제공(蔡濟恭)에게 대병 1좌, 당상 7명과 낭청 5명에게 각각 대병 1좌씩을 분상하였다고 한다.
1795년은 정조의 모친 혜경궁(惠慶宮)이 회갑을 맞는 해이며 부친 사도세자의 탄신 60주년이 되는 해였다. 정조는 이를 기념하여 혜경궁을 모시고 현륭원을 참배하고 화성의 행궁에서 혜경궁에게 진찬례를 올렸다. 진찬은 정조 일행이 화성에 도착한지 3일째 되는 윤2월 13일에 화성행궁의 내당인 봉수당에서 거행되었다.
봉수당 뜰 위에는 덧마루가 깔려 있고 백목 휘장이 3면에 둘러져 있다. 이 덧마루 위에 정조의 시연위(侍宴位)와 배위(拜位), 의빈 · 척신의 시연위, 그리고 악공들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봉수당 앞 기둥에는 주렴이 내려져 있어 실내에 설치된 혜경궁, 내외명부(內外命婦), 여관(女官)들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중양문(中陽門)과 좌익문(左翊門) 사이에는 한양에서부터 어가를 수행한 배종백관들이 각기 독상을 앞에 두고 좌우로줄지어 앉았다. 덧마루 위에는 이날 진찬례에서 공연된 향발(響鈸), 아박(牙拍), 쌍무고(雙舞鼓), 선유락(船遊樂) 등의 정재가 그려져 있다.
정조의 자리 앞에는 선도(仙桃)를 올리는 모습이 묘사되었고 덧마루 남쪽 가까이에는 포구문(抛毬門) 2개가 준비되어 있어 헌선도(獻仙桃)와 쌍포구락(雙抛毬樂)도 이날 공연된 정재의 일부였음을 알 수 있다.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의 「봉수당진찬도」는 윤곽선이 애매하거나 흐트러진 부분 없이 작은 부분까지도 한결같이 정확한 것이 특징이다. 찬안(饌案) 및 음식상, 참석자들 머리의 삽화(揷花), 배종백관 · 여령(女伶) · 악공의 복식, 각종 무구(舞具)와 의장기 등의 세부 묘사는 일정한 수준으로 치밀하고 꼼꼼하다.
봉수당의 기둥, 덧마루의 계단, 정재 의장을 세워놓은 기(機), 가교(駕轎)가 놓인 단(壇), 선유락의 채선 등 윤곽선 주위에 명암을 살짝 가해 입체감을 살렸다.
필치와 완성도 면에서 볼 때 1795년 현륭원 행차와 관련된 현전하는 그림 중에서 가장 우수한 편에 속하는 그림이다.